“대사가 너무 촌스럽고 설명적이라 촬영하면서 감독님한테 계속 불평을 했다.” ‘공공의 적 2’에서 강철중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가 밝힌 내용이다. 이 영화는 노골적이고 투박한 대사와 설정들이 끝도 없을 것처럼 반복되는, 가히 ‘주입식 영화’라 할 만하다. 평균적 관객의 욕구와 지적 감성적 수준을 얄미울 만큼 읽어 내 ‘흥행의 귀재’란 소리를 듣는 강우석 감독의 속셈은 그러면 뭘까? 바로 ‘촌스러움의 테크닉’이다. ‘공공의 적 2’에서 촌스러움을 전략화한 대목들을 콕콕 짚어 봤다. 물론 이런 ‘지능적 투박함’에 대해 성적을 매기는 건 철저히 관객의 몫이다.
① “나 나쁜 놈이오” 까놓고 말하기
이 세상 나쁜 놈치고 “나 나쁜 놈이오” 하는 나쁜 놈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 속 나쁜 놈은 “나 나쁜 놈이오” 한다. 5000억 원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사학재단 이사장 한상우(정준호)는 ‘못 가진 자’를 “태생이 천한 것들”이라고 대놓고 조롱한다. 여기에 숨은 전략은 ‘다수 마케팅’. ‘내 얘기네’라고 생각한 다수 관객의 심기를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어 영화에 확 빨려 들도록 유도하는 것. 서민을 “월드컵 축구나 보여 주면 될” 존재라고 한상우가 폭언을 하는 것도 월드컵 축구에 열광했던 다수를 ‘열 받게’ 만든다. 반면 강철중 검사는 검사가 아닌 관객을 대변해 “넌 공공의 적이야” “이런 나쁜 놈” “이 개새끼야” 등 무지막지한 대사를 한상우에게 퍼붓는다(이상 표 참조). 한상우의 대사로 관객의 속을 뒤집은 뒤 강철중의 대사로 후련하게 해 주는 일종의 ‘병 주고 약 주기’식 전략. 이 과정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멋있는 말로 ‘카타르시스’라고도 한다.
②표정 밀어붙이기
캐릭터를 살아 꿈틀거리게 하기보다는 반대로 딱딱하게 고착화하는 전략을 추구하는 이 영화의 두 주연 배우는 몇 개의 표정만을 설정한 뒤 끝까지 밀어붙인다. 고정된 표정은 두 인물 간 선악 대결구도의 강력한 에너지를 만드는 효과를 낸다. 정준호는 △뺨을 실룩이며 냉소하기(사진 1-1) △위선적으로 쳐다보기(1-2) △잔혹하게 성질내기(1-3) 등 단 3개의 표정을, 설경구는 △“하이” “치즈” 하면서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기(2-1) △응징 의지를 속으로 다지기(2-2) △폭발 직전(2-3) 등 3개의 표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③관객에게 복습효과 주는 ‘한 얘기 또 하기’
악역인 한상우는 혐오스러운 짓으로도 모자라 그 행위를 대사로 반복하며 확인한다. 계약서 사인 난에 보란 듯이 ‘Richard’라고 영어로 서명해 관객에게 밉보인 한상우는 여기에 더해 “저야 피부만 노랄 뿐이지, 미국 시민권자 아닙니까”라고 말함으로써 ‘정말 죽일 놈’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담배꽁초 버리는 것을 타이르는 환경미화원을 자신의 외제승용차로 들이받은 한상우는 뺑소니치기 전 “천하게 살아도 목숨 귀한 줄 알아야지, 영감. 분수를 모르니까 그렇게 되잖아” 하고 꼭 한마디를 던짐으로써 빈부갈등과 노소갈등을 요점 정리해 부각시킨다. 관객에게 복습효과를 일으키는 이런 전략을 업계 일부에선 ‘꾹꾹 눌러 주기’라고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감독)에서 동생이 “형 돌아가야 해” 하는 한마디로 끝나지 않고 “어머니가 기다리시잖아, 형” “형, 우리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해” 하고 비슷한 대사를 무지하게 반복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도 같은 기술.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나쁜 놈’(한상우) 대사‘착한 자’(강철중) 대사“못 가진 콤플렉스끼리 힘을 모아 부자들을 공격하 면서 그게 정의라고 부르짖지.”
“태생이 천한 것들이 괜찮은 자리에 오르면 착각을 해.”
“(천한 것들은) 세금 몇 만 원 깎아 주고 월드컵 축구 나 계속 봬 주면 돼. 니들은 니들끼리 살란 말이야!
버러지 같은 인생들끼리.”“많이 배우고 많이 가져서 도망갈 길도 많은 것들.”
“한상우 나쁜 놈이잖아요. 나쁜 놈 잡아야죠.”
“검사가, 대한민국 검사가, 공공의 적을 세워두고 누울 수 없거든.”
“그래. 난 태생이 천해서 월드컵 4강 나간 날 빤스 (팬티)만 입고 광화문 뛰어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