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1월 17일 새만금 사업 소송재판부가 ‘민관공동위원회를 만들어 간척지 용도와 개발범위를 원점에서 논의하고 그동안 방조제를 막지 말라’고 조정권고 해 정부와 환경단체가 이 조정을 수용하든 않든 새만금 사업은 또다시 장기 표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정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 이런 초대형 국책사업의 타당성이 사법부의 판단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과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환경단체가 제기한 새만금 매립면허 취소소송은 각하판결을 받았고, 같은 내용으로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헌법소원도 2003년 각하됐다. 시화호 같은 환경 재앙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우려를 이해 못할 바 아니나 이 사업이 다시 표류할 경우 발생할 막대한 추가 비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해야 옳았을 것이다.
특히 이번 재판부가 조정을 권고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문제 삼았던 부문은 방조제 완공 후 새만금호의 수질과 간척지의 이용계획이다. 그러나 새만금호의 미래를 실패한 시화호의 경험으로 예단하는 것은 무리다. 인근에 심각한 오염원인 안산시와 반월공단이 있는 시화호와 새로 조성될 새만금호는 여러 면에서 구조적으로 다르다. 더욱이 2001년 새만금 사업 재개 결정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집중적인 환경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실제 만경강 수질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갯벌 보전이 우선이냐, 쌀 생산이 우선이냐’는 문제는 결국 국민 각자의 가치판단의 문제여서 누구든 주장을 펼 수 있지만 새만금호의 수질확보는 전문가들의 설계와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되면 충분히 달성될 수 있는 목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새만금 사업의 검토 배경은 1980년대에 겪었던 만성적 쌀 부족 문제였다. 그러나 2000년 들어 쌀이 남아돌게 됐고, 또 10년, 20년 뒤엔 남북통일 등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정상적으로 사업이 추진돼도 새만금 사업이 완료되고 간척지 용도를 확정짓는 것은 10∼15년 뒤에야 가능할 것이므로 농지와 함께 첨단과학단지, 종합레저단지 등을 조성할 것인지는 그때 가서 국토종합개발계획과 산업수요를 감안해 결정할 수 있다. 지금 그 용도를 서둘러 재검토하는 것은 또 다른 불씨를 남길 수 있다.
물막이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있는 새만금 방조제 미완성 구간.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필자는 네덜란드의 주다치 방조제를 둘러본 일이 있다. 32km의 거대한 방조제를 쌓아 22만5000ha의 토지를 조성하고 이를 그림 같은 농지와 도시, 공원 등으로 활용해 엄청난 국부를 창조하고 있었다. 이 사업으로 만들어진 아이젤미어 호수는 새만금 담수호의 10배 크기지만 철저한 수질관리로 250만 명의 생활 및 공업용수로 사용되며 관광명소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는 훌륭하게 하는 일을 우리는 왜 부정적으로만 보는지 안타깝다. 새만금의 경우 이미 민관조사단이 오랫동안 충분히 논의했고 식상할 정도로 논쟁도 했다. 이를 또 반복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새만금 재판부는 주다치 방조제를 꼭 둘러보고 참고하기 바란다.
한갑수 서울대 초빙교수 전 농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