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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자오쯔양 유골 다시 ‘집으로’

입력 | 2005-01-30 18:30:00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장례식이 사망 13일째인 29일 베이징(北京) 근교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원묘지에서 거행됐다.

하지만 유족들이 당국의 사후 평가에 불만을 품고 유골을 안치하지 않고 자택으로 옮겨 양측 대립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이날 바바오산 주변에는 조문객보다 많은 경찰 병력이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폈으며 반체제 인사들과 경찰 간에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장례식 표정=자오 전 총서기의 유해는 오전 6시 10분 베이징의원을 출발해 창안(長安) 가∼베이징호텔∼톈안먼(天安門) 광장∼인민대회당∼중난하이(中南海·당지도부 사무실)를 거쳐 오전 6시 45분 바바오산에 도착했다.

영결식장 전면 가운데 놓인 유해는 중국 전통복식을 입었으며 공산당기로 덮어 얼굴만 보이도록 했다. 영정 위에는 ‘자오쯔양 동지를 깊이 추모한다’는 글이 걸렸다.

장례식은 예정보다 한 시간 빠른 오전 8시에 시작됐다. 권력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과 허궈창(賀國强) 정치국 위원, 왕강(王剛) 당 중앙판공청 주임, 화젠민(華建敏) 국무원 판공청 비서장 등이 당중앙과 정부를 대표해 유해에 고별인사를 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오전 8시 30분부터 1000여 명의 조문객이 한 줄로 서서 5명 단위로 유해에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영결식장을 떠났다. 오전 10시 영결식이 끝난 뒤 유해는 곧바로 화장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장례식 직후 “개혁개방 전기(前期)에 중앙과 국가의 중요한 영도 직무를 맡았고 당과 인민을 위해 유익한 공헌을 했다”면서 “그러나 1989년 봄부터 여름에 걸친 정치풍파 중 엄중한 과오를 범했다”고 지적해 고인에 대한 생전 평가를 수정하지 않았다.

▽유족의 반발과 장례식장 주변 충돌=유족들은 고인을 폄훼한 신화통신 보도에 반발해 유골 안치를 거부하면서 “당국의 정당한 평가가 이뤄질 때까지 유골을 자택에 보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국이 고인에 대한 평가를 수정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유골 안치를 놓고 양측의 신경전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당국은 바바오산 혁명공원묘지에 이르는 1km의 도로와 묘지 진입로에 2000여 명의 정사복 경찰을 배치해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참석증을 받지 못한 1000여 명의 일반인은 공원묘지 진입로 입구에서 출입을 차단당했으며 일부 대학생들은 바바오산 전철역까지 도착했으나 경찰의 통제로 역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일부 시민 간에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