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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문홍]위그선(船)

입력 | 2005-01-31 17:54:00


1976년 서방의 첩보위성은 카스피 해(海)에서 물 위에 낮게 떠 시속 500km 이상으로 이동하는 ‘괴물체’를 발견했다. 당시 상식으로 이것은 선박도, 비행기도 아니었다. 선박이라면 그렇게 빨리 달릴 수가 없고, 비행기라고 하기엔 너무 낮게 날기 때문이었다. 군사전문가들은 이 물체를 ‘카스피 해의 괴물’로 명명하고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훗날 밝혀진 이 괴물체의 이름은 ‘위그선(wing-in-ground effect ship)’. 구소련이 1960년대부터 군사 목적으로 개발한 새로운 차원의 수송 수단이었다. 위그선은 날개가 해수면에 가까워질 때 선체를 떠받치는 양력이 커지는 ‘지면효과’를 기본원리로 활용한다. 이에 따라 일반 선박으로는 낼 수 없는 고속이 가능하고, 항공기에 비해 절반 이하의 비용으로 대규모 화물과 인원을 수송할 수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위그선을 선박으로 분류했지만, 한마디로 비행기와 배의 장점을 모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위그선 개념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3년 한-러시아 과학기술 교류사업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당시에 도입된 위그선 설계 기술은 호수나 강처럼 파고(波高)가 낮은 해상에서만 운항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동안 이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 온 한국해양연구원이 그런 한계를 극복할 기술 개발에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 엊그제 발표된 10가지 대형 국가연구개발(R&D) 실용화 사업 중 하나로 위그선이 포함됐으니 그렇다.

▷정부 발표대로 5년간 1200억 원을 투입해 위그선 실용화에 성공한다면 동북아 해상물류 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 ‘동북아 경제중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물류중심’ 정도는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기왕에 국가적 지원이 결정됐으니 위그선 사업을 확실하게 밀어줬으면 한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제는 한 가지 첨단기술이 국가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는 시대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