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라고 한다. 예술은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산업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이미지도 한층 높여 준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예술을 중요한 전략산업으로 지정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유명한 문명 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 씨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시아 미국 유럽의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 아시아 연합을 주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라고 말했다.
그 전제조건은 현재의 한류 열풍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류의 진원지인 우리의 모습을 보면, 이웃 나라에 한류 열풍이 인다는 사실에 흐뭇해 하기만 할 뿐 이를 범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승화시켜 나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최근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나온, ‘한류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만 한다’는 당국자의 발언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과연 단군 이래 우리의 예술이 아시아를 뛰어넘어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해 나가 전 세계인의 가슴을 뜨겁게 적신 적이 있었던가. 일본에서 불고 있는 ‘용사마 열풍’을 돈으로 환산하면 2조4000억 원의 놀라운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모처럼 우리 민족에게 ‘축복’과 같이 내려진 이 한류 열풍을 이렇게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한류 열풍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가 우리에게 맡긴 소명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11월 ‘한류 열풍’의 주역 배용준 씨가 일본 나리타 공항에 모습을 나타내자 6000여 명의 일본 여성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런데 한류를 이끌고 있는 예술산업을 국가가 육성하겠다는 의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국가 장기 발전 계획에서도 예술산업은 제외되어 있고, 수십 개의 대통령자문 위원회가 있지만 예술산업을 자문한다는 위원회는 들어 보질 못했다. 예술산업은 문화관광부가 만든 정책보고서의 한 꼭지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예술산업을 획기적으로 진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시급히 제안한다. 첫째, 대통령 직속 예술위원회의 설치를 바란다. 미국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예술자문기구를 별도로 구성해 예술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위원회는 기업의 최고경영자, 각종 재단의 책임자, 예술가, 학자, 사회 지도자, 문화기관의 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들은 만든 ‘크리에이티브 아메리카(Creative America)’라는 보고서는 예술산업 진흥의 기초 자료가 된다.
늦었지만 우리도 대통령 직속의 예술위원회를 발족시키고 가칭 ‘Art Korea 21’ 같은 예술발전 종합 보고서를 펴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예술산업을 국가의 핵심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국내 예술대학을 세계적인 전문예술대로 육성해야 한다. 세계의 예술산업을 주도하는 나라에는 훌륭한 예술대가 있기 마련이다. 영국에는 런던예술대, 독일에는 베를린예술대, 일본에는 도쿄예술대, 미국에는 시카고예술대가 있어 예술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예술 인재를 국가의 중요한 인적자원으로 보고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예술대를 못 키울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능력 있는 예술대에 대해서는 일반 대학과 차별화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각종 규제도 철폐해야 한다. 예술이 국력이 되는 시대에 우리가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을 수 있으려면 말이다.
노건일 서울예술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