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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일민미술관 韓中日 현대 목판화전 열려

입력 | 2005-01-31 18:04:00

김준권작 '엉겅퀴'(53Χ53.5cm·1991)


판화를 ‘현대 미술의 새로운 대안’으로 모색하는 이색 전시가 열린다. 18일∼4월 3일(월요일 휴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 ‘Red Blossom-동북아 3국 현대 목판화’전은 흔히 목판하면 떠오르는 ‘흑백’의 거친 손맛이 느껴지는 화면이 아니라 회화를 능가하는 섬세함과 화려함으로 판화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여기에 한국 중국 일본의 대표적 판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3국의 생활문화를 ‘현대 목판화’라는 시각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판화는 다양한 기법으로 판(版)을 만들어 똑같은 작품을 여러 점 찍어낼 수 있는 복수 미술(멀티플)의 대표적 형식. 이런 특성 때문에 한번에 한 점밖에 만들 수 없는 회화에 비해 희귀성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주목받아 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민미술관 김희령 수석큐레이터는 “다양한 매체의 확산과 지나친 추상으로 회화의 본령이 퇴색해 가고 있는 요즘 현대 판화는 이제 대량복제라는 실용적 목적을 넘어 회화를 능가하는 화려하고 섬세한 화면들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시에 선보이는 3국의 목판화들은 각국의 독창적 미학을 대표한다. 중국 목판화는 사회주의 국가의 선동매체였다는 특징답게 리얼리즘 미학으로서의 전달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중국 판화를 세계무대에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판화가 장민지에의 ‘전환’ 시리즈는 서커스단, 제복을 입은 군대 등 다양한 군중 속에서 자유를 찾고자 하는 고독한 인간의 심리를 드러낸다. 이 밖에 닭, 토끼, 말 등 12간지(干支) 동물을 컬러풀한 이미지로 표현한 반링, 중국 서민들의 다양한 초상을 나타낸 자리젠, 꽃을 소재삼아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리웨이 등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일본 목판화는 우키요에(18세기 일본 에도시대의 목판화) 같은 다색 목판화가 대표하듯 정교하고 화려하면서도 소재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특징. 닭띠 해를 맞아 울타리나 파도에서 뛰쳐나가는 닭 무리를 통해 자유의 의미를 되새긴 가와치의 작품들이나 주변 사물을 단순한 선으로 묘사한 사카모토의 파스텔톤 화면, 일본 곳곳의 풍경을 화려하게 묘사한 모리무라의 작품들은 목판화의 영역이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 목판화는 판화가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맥을 이어 온 김상구 이상국 홍선웅 김준권 류연복 정비파 임영재 이인애 씨의 작품들이 나온다. 홍선웅 씨는 쌍계사 미황사 문수산성 등 명승지를 그림처럼 섬세하게 목각에 되살렸으며 이상국 씨는 도시 달동네의 모습들을 단순하고 간결한 선으로 묘사했다. 엉겅퀴 오름 등 자연물을 따뜻한 선과 색채로 표현한 김준권 씨의 작품들도 볼 만하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고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목판 원판과 목판화를 보여주는 특별전 ‘한국의 고판화(古版畵)’전도 함께 열린다.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 제877호)이나 묘법연화경(보물 제1306호), 수선전도(보물 제853호) 등 보물과 다양한 책, 지도, 능화판 등 국내 최초로 판화 유물들이 한꺼번에 모인다.

18일 오후 1시 반 리웨이(판화작가, 미술평론가)의 ‘중국 현대목판화’ 강연을 시작으로 19일(시간 동일) 마쓰야마 다쓰오(‘판화예술’ 편집장)의 ‘일본 전통목판화의 현대화’, 3월 11일 명지대 이태호 교수의 ‘한국 목판화의 시대적 흐름’을 주제로 한 강연도 열린다.

직장인도 퇴근 후 볼 수 있게 관람시간이 늦춰졌다. 화∼토 오전 11시∼오후 9시(고판화전은 오후 7시까지). 일, 공휴일 오전 11시∼오후 7시. 관람료 성인 3000원, 초중고교생 2000원. 02-2020-2055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