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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이라크]시아파 정권의 ‘머나먼 길’

입력 | 2005-01-31 18:13:00


《“이것이 민주주의다!” 지난달 30일 이라크 바그다드 남부의 작은 마을 아스칸의 투표소. 온몸을 감싸는 전통의상 ‘아바야(장옷)’에 ‘히잡(머리 스카프)’을 쓰고 투표를 마친 파티야 모하메드 씨(여)는 감격에 겨워 이렇게 말했다. 간간이 폭발음이 들리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투표장에 오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모하메드 씨는 이중투표를 막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엄지에 찍어 준 ‘보라색 특수잉크’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한참 바라보았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역사적인 첫 자유 총선을 치르면서 이라크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 손가락에 보라색 잉크를 묻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오랫동안 잡아 온 정치적 주도권을 잃게 된 수니파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은 손에 잉크 묻히기를 거부했다.외견상 이라크는 민주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국가 분열이란 또 다른 난제가 앞길을 막아서고 있다. 이라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총선 이후 이라크의 앞날을 3회에 걸쳐 점검한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이라크 총선에 대해서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뿐 아니라 이라크전쟁에 반대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까지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외신들도 저항세력의 총선 방해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라크 선거관리위원회가 31일 추정한 투표율은 60∼75% 선. 총선 성패의 분기점으로 삼았던 투표율 50%보다 훨씬 높다. 향후 구성되는 제헌의회와 정부가 그만큼 정통성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아랍권 언론들은 총선 이후 이라크에 대해 ‘우려 반 기대 반’의 논평을 내놓았다. 해결해야 할 난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수니파 끌어안기=이라크에 서구식 민주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무엇보다 수니파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총선을 사실상 거부한 수니파의 저항이 계속되는 한 향후 정치 일정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 3월 제정된 임시헌법은 이라크 18개 주 가운데 3개 주가 반대하면 제헌의회가 만든 영구헌법 초안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바르, 살라후딘, 니네베 등 3개 주에 집중 거주하는 수니파가 영구헌법 제정을 방해할 수 있는 ‘불씨’인 셈이다.

이에 따라 시아파 지도자들은 총선 직후 수니파를 헌법 초안 작업에 참여시키는 것은 물론 권력까지 나눠주겠다고 약속하며 ‘수니파 끌어안기’에 나섰다.

▽정부 형태 논란=제헌의회가 만드는 새 헌법에 따라 이라크의 정부 형태가 정해진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31일 “이라크 지도자들은 지역별 자치에 근거한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2년 7월 시아파 지도자들은 ‘이라크 시아파 선언문’을 통해 민주주의, 연방주의, 사회공동체 권리 등 3가지 원칙에 입각해 이라크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아파가 수적 우세를 내세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연방을 분할하면 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쿠르드족의 독립 움직임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또 새 시아파 정부가 이란식 신정(神政) 체제를 도입한다면 미국과는 물론 주변 수니파 아랍국과도 마찰을 빚을 수 있다.

▽믿음보다 빵이 먼저=새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는 31일 “집권 시아파는 만연한 실업과 범죄, 계속되는 야간 통행금지, 연료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그다드 주민인 시아파 카림 씨(43)는 “새 정부는 전기를 줄 것이고, 아들에게 직업도 줄 것이며, 어린이들은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향후 일정=2월 중순 이후 출범하는 제헌의회는 2월 말까지 대통령과 부통령 2인으로 구성된 대통령위원회를 구성한다. 총리는 대통령위원회가 3월 초 뽑을 예정. 총리가 3월 말∼4월 초 내각을 구성하면 제헌의회가 이에 대해 인준권을 가진다.

이후 제헌의회는 8월 15일까지 영구헌법 초안을 작성해 10월 15일까지 찬반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영구헌법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 12월 15일까지 새 의회 선거가 실시되고 12월 31일까지 정통성을 갖는 민주정부가 출범한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이라크의 향후 진로 문답▼

제헌의회 의원 275명을 뽑는 자유 총선거가 실시됨으로써 이라크의 민주주의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영국 BBC방송과 인디펜던트지, 미국 외교협회가 소개한 이라크의 진로와 총선 전망을 문답으로 정리한다.

Q: 총선 결과는….

A: 수작업으로 촛불을 켠 채 개표작업을 하고 있어 일주일쯤 지나야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공식 개표 결과는 20일이다.

Q: 누가 승리할까.

A: 수니파의 투표율이 극도로 저조해 다수파인 시아파가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자치권을 사실상 확보한 쿠르드족도 성공했다고 볼 것이다.

Q: 이라크 정치체제는 어떻게 바뀌나.

A: 입법 사법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 분립이 이뤄질 전망이다. 대통령 위원회는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다. 또 연방대법원을 포함한 사법부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지명권을 갖는다.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총리는 행정업무를 책임진다. Q: 연합군은 언제 이라크를 떠날까.

A: 유엔 결의안 1546호에 따르면 이라크 해외주둔군은 새 헌법에 따라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만 주둔토록 되어 있다. 다만 새 정부는 외국 군대의 주둔 연장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향후 2년 정도는 이라크에 주둔할 계획임을 시사 하고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