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대 교수 김봉연. 직함은 낯설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 아닌가. 30대 중반 이상이면 ‘탁’ 하고 무릎을 칠 추억의 그 이름. 축구선수 중에 동명이인이 있었지만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김봉연의 명성 앞에는 명함을 못 내민다. 1982년 프로야구 창설 때 선수의 연봉 상한선을 미리 그의 몸값에 맞췄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김 교수가 주초 본사를 방문했다. 기자와의 친분도 있었지만 학창 시절부터 3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내의 지인을 찾아온 것. 이 바람에 그를 아는 나이 지긋한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즉석에서 얘기꽃을 피웠다.
홈런왕으로 알려진 김 교수가 연세대 신입생 때 고려대와의 정기전에 투수로 나서 노히트노런을 한 ‘대형사고’, 타격 3관왕 석권을 노리고 대한해협을 건너온 일본 타격왕 출신 백인천에 맞서 토종 홈런왕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부러진 다리가 채 낫지 않았는데도 경기 출전을 강행했던 일…. 경기를 앞두고 모처럼 고기를 욕심껏 먹었다가 배탈이 난 대목에선 웃음보가 터졌다.
김 교수의 얘기 중 한 가지. 그는 “요즘 20대 초반의 학생들만 해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때문에 4년 전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단에 섰을 때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자신의 별명처럼 워낙에 ‘촌놈’ 체질인 데다 가르쳐 본 경험도 없는 터에 먼저 아는 체해 줬으면 했던 학생들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으니 진땀이 나더라는 것.
그러나 요즘은 정반대라고 했다. 올드팬인 학부모들이 “진짜 김봉연 씨가 너희 교수냐”면서 직접 찾아와 확인 눈도장을 찍는 일이 거듭되자 학생들도 그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갖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유명세 덕분인지 김 교수는 대학의 홍보실장과 학생처장을 겸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프로야구는 그동안 왕년의 스타에 대한 존경심을 보이는 데 인색했던 것 같다. 야구 도입 100주년을 맞아 명예의 전당을 건립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역사를 알아야 현재가 있고 미래가 보인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