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이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을 세계적인 문화산업도시로 키워나가겠다”며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이명박(李明博)’ 하면 사람들은 성장신화와 불도저를 연상한다. 건설회사 최고경영자(CEO) 시절이나 국회의원 때나 서울시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지금이나 그에게 따라붙는 트레이드 마크는 불도저 같은 강한 추진력이다. 부정적 평가는 결코 아니지만 그는 이런 이미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서울을 세계적인 문화산업 도시로 탈바꿈시켜 ‘문화 시장(市長)’으로 기억되는 게 그의 소망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뜯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는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면서 ‘옥에 티’를 잡아낼 수 있는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도 첫 월급을 훌훌 털어 독일제 최고급 카메라 라이카 M3를 샀던 사람이다.》
○매년 수백만 관광객 유치 목표
겉보기엔 문화에 문외한인 것처럼 보이는 그가 “10년 뒤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은 바로 문화콘텐츠 산업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소신도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일부에선 그를 바라볼 때 문화나 행정보다는 차기 대권 행보를 먼저 떠올린다. 신행정수도를 둘러싼 여권과의 이견도 이런 코드로 읽힌다. 그의 얘기를 일부 다룬 TV 드라마의 조기 종영(終映)도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열린 뮤지컬 ‘캣츠’ 공연장에서 이 시장이 한 어린이에게 분장을 해 주는 모습. 김미옥 기자
이래저래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 시장을 1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서울이 문화산업 도시로 탈바꿈하려면 여러 가지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강대교 중간의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남산골엔 국악 전용 공연장을 만들려고 한다. 또 마포구 상암동엔 애니메이션 전용 극장을 짓고,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엔 난타 전용 공연장도 만든다. 대중음악을 위한 전용 콘서트홀도 지을 예정이다. 지금은 정보기술(IT) 산업이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지만 5∼10년 뒤엔 문화콘텐츠 산업이 우리를 먹여 살리게 될 것이다. 서울시가 앞장서서 서양음악과 국악, 고급음악과 대중음악이 서로 어우러지는 문화산업을 키우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답변 도중 “그동안 문화와 예술을 즐길 기회가 거의 없었지 않았느냐”며 말허리를 잘랐다.
“(오른손을 가로저으며) 그럴 것 같죠? 사실은 안 그래요. 외국에 출장을 가서도 짬을 내 음악공연을 즐기거나 미술관을 찾을 정도로 전 겉모습과는 딴판이죠. 영국 런던에 갔을 때 밤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가기도 했어요.”
이 시장은 평소 서울은 중국 베이징(北京)이나 일본 도쿄(東京), 미국 뉴욕 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서울을 동북아시아의 허브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여기서 출발한다.
지난해 성탄절 산타복장으로 한 보육원을 방문한 이명박시장. 사진 제공 서울시
―서울을 동북아의 중심도시로 만들기 위한 선결과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물류와 교통이 편리해야 한다. 서울시내에 위치한 김포공항은 국제공항으로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물류보관 창고도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노선 전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서울을 동북아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 안에 있는 도쿄나 베이징, 상하이(上海) 같은 도시는 셔틀비행기가 다닐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 시장은 이 대목에서 “김포공항의 이름을 서울공항으로 바꾸되 대통령의 출국이나 군사적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는 서울공항은 성남공항 등 다른 이름으로 바꾸자”고 정부에 간접 제안했다.
―롯데 측이 서울에 세계 최고층 빌딩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서울이 현대와 고전이 어우러지는 도시가 되려면 상징적인 초고층 건물도 있어야 한다. 롯데가 잠실 제2롯데월드 부지에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하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준비된 땅이 있고 자기 자본으로 하겠다는데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뭐 있겠는가.”
―올해 10월 1일이면 청계천이 복원돼 44년 만에 물이 흐르게 된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 복원을 환경의 복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하천의 복원이 아니다. 청계천이 복원됨으로써 도심의 바람 길이 다시 열리고 대기의 순환속도가 빨라져 대기오염이 크게 줄어든다. 프랑스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사람의 심성까지도 변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도쿄의 고가도로를 뜯어내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12월 21일 1면 머리기사로 청계천 복원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청계천 복원이 새로운 한류(韓流)가 되고 있는 셈이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 시장은 취임 후 지금까지 2년 7개월간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 시스템 개편, 뉴타운 개발, 서울 숲 조성 등 굵직한 결과물을 많이 내놓았다.
―서울시장으로서 스스로 꼽는 최대 성과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서울시 공직자들에게 경영마인드가 배어들고 있다는 점을 최대의 성과로 꼽고 싶다. 청계천 복원이나 대중교통 시스템 개편은 일회성 성과지만 공직자가 변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시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가 있다.”
대권에 대한 그의 의중이 궁금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차세대 지도자 최대덕목은 경제
―차세대 지도자의 첫째 덕목을 꼽는다면….
“시대에 따라 나라를 이끌 지도자의 모습은 계속 바뀌어야 한다. 21세기는 경영의 시대다. 국가도 도시도 대학도 기업도 모두 경영하는 시대라는 의미이다. 독립군이나 민주화의 선봉에 선 사람을 지도자로 원하던 시대에서 경제대통령을 원하는 시대가 왔다. 이젠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끝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이렇게 답변하는 마당에 ‘차기 대선에 출마할 거냐’고 묻는 건 우문(愚問)인 것 같아 우회적으로 출마 의사를 물었더니 “국민이 선택을 할 것이다”는 말로 직답을 피해갔다. ―최근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행정중심도시에 대한 견해는….
“공무원만 이동하고 생산과 고용 효과가 없는 행정도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충청도민만 또다시 속이는 꼴이다. 충청권을 살리려면 공주-연기만 생각하지 말고 대덕의 연구단지, 오송의 생명과학산업단지 등과 연계해서 생산과 고용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 시장은 인터뷰 말미에 “한국은 라이트나 레프트가 아닌, 시장경제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뉴 라이트’로 가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일고 있는 뉴 라이트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인터뷰=이진녕 사회부장 jinnyong@donga.com
정리=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이명박 시장은▼
△1941년 12월 19일 경북 포항 출생
△포항 동지상고,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서강대 명예경영학 박사
△현대건설 인천제철 등 현대 계열사 8개사 대표 이사 회장
△제14, 15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서울특별시장(2002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