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이라크 남단 바스라에서 이라크 경찰들이 총선 성공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다. 총선 이후 시아파 주도 국가로 변한 이라크는 앞으로 대통령, 부통령, 총리 선출을 포함한 대규모 정권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
‘알라’의 율법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이라크 제헌의회 의원들이 뽑혔다. 집권세력이 수니파에서 시아파로 바뀌면서 이라크 정국은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이라크 정치 지도는 앞으로 ‘1강(시아) 1중(쿠르드) 1약(수니)’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시아파의 주도권 경쟁=대통령과 부통령, 총리 자리를 놓고 압둘 아지즈 알 하킴 이슬람혁명위원회(SCIRI) 의장, 이야드 알라위 현 총리, 이브라힘 자파리 다와당 당수, 후세인 알 샤리스타니 핵 과학자 등이 다투고 있다.
특히 실질적인 정국 운영자인 총리 자리를 놓고 하킴 의장과 알라위 총리의 승부가 예상된다.
종교지도자인 하킴 의장은 제1당으로 떠오른 이라크동맹연합(UIA)의 공천자 명단 1번. 이라크 최고 종교지도자 알리 알 시스타니 씨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는 “이라크에서 다른 나라 군대가 떠나기를 원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이란식 신정(神政)국가는 아니더라도 종교 중심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민족주의적 성향 덕분에 대중적 인기가 높다.
알라위 총리는 하킴 의장과 장단점이 거꾸로다.
지난해 5월 총리에 임명된 이후 각종 정책을 밀어붙여 ‘강한 사람(tough man)’이란 명성을 쌓았다. 영국 망명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관계를 갖는 등 서구 국가들과 유대가 깊다. 그는 “선거 후에도 미군은 주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대중적 반감을 사고 있는 게 단점이다.
마지막 킹 메이커 역할은 시스타니가 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31일 시스타니가 지지하는 UIA가 총투표 중 50%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는 미군 관리의 말을 전하며 “사실상 시스타니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시아파 지도자들은 수니파 독주에서의 해방을 꿈꿔 왔다는 점에서 ‘경쟁 속의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숨죽인 수니=수니파는 총선에 대거 불참해 영향력 상실을 자초했다.
주요 인물은 가지 알 야와르 과도정부 대통령과 무신 압둘 하미드 이라크이슬람당 당수.
시사주간 타임(1월 31일자)은 “시아파 정권이 수니파를 달래기 위해 야와르 대통령을 제헌의회 의원들이 뽑는 새 대통령으로 재추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미국 관료들과 하미드 당수 사이에 ‘깊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며 “총선 불참을 주장한 이라크이슬람당을 끌어안기 위해 미국이 하미드 당수에게 당근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탄탄한 단결력, 쿠르드=쿠르드족을 이끄는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민주당(KDP) 당수와 잘랄 탈라바니 쿠르드애국동맹(PUK) 당수는 경쟁 관계.
하지만 이번 총선에 ‘쿠르드연맹리스트(KAL)’라는 공동 후보자 명단을 내세울 만큼 ‘쿠르드족 자치권 확대’를 위해 단결했다.
향후 제헌의회에서 발언권을 강화해 대통령이나 총리 자리도 쿠르드 몫으로 돌리려는 계산을 갖고 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태풍의 눈’ 사드르▼
강경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32)는 신정(神政)일치 국가를 추구한다.
총선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가 시아파 집권 후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 관심을 끈다.
그는 알리 알 시스타니와 함께 시아파 최고 종교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아버지 무하마드 사티크 알 사드르의 후광을 입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중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해 5월과 8월 시아파 성지 나자프에서 미군에 맞서 대규모 저항작전을 지휘한 것이 정치적 ‘데뷔전’이었다면, 지난해 9, 10월 바그다드 외곽 사드르시티에서 과도정부와 강경 대치한 것은 정치 주도권을 놓고 벌인 ‘타이틀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휴전을 선언하며 자신이 이끄는 메흐디 민병대를 자진 해산했다. 이후 이야드 알라위 총리가 합법적 정치 활동을 보장했지만 모습을 감췄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사드르의 추종자들이 과도정부에 서서히 반기를 들며 움직이고 있다”면서 “은둔중인 사드르가 제도권 정치 이외의 방법으로 영향력 행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는 과도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이라고 비난한 철저한 반미주의자다. 따라서 향후 구성될 이라크 정부의 성격에 따라 사드르는 다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