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관련자들이 숨진 지 30주기를 맞아 그들을 소재로 연작소설을 쓴 작가 김원일 씨. 동아일보 자료사진
중앙정보부는 1974년 4월 당시 일련의 학생시위를 주동해온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배후는 이른바 인혁당(인민혁명당)이라고 공개했다. 이때 서른세 살의 국민서관 직원이었던 김원일 씨는 “인혁당 사람들이 거의 다 (내가 자란) 대구 사람이라는데, 거기도 그런 커다란 좌파 지하조직이 있었다니…” 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그는 남로당 활동을 하다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어린시절 주눅이 든 채 자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난달 31일 인혁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이 돼 사라져간 여덟 명의 청춘과 죽음을 다룬 연작소설 ‘푸른 혼’(이룸)을 펴냈다. 이날 만난 그는 오랜 숙제를 마친 표정이었다. 그는 “중앙정보부의 발표가 있고 꼭 1년 후에 인혁당 관련자들이 처형됐다. 그때 이미 많은 사람은 ‘인혁당은 유신정권이 죄없는 젊은이들을 고문해서 만들어낸 허깨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894년 유대계 프랑스 사관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군에게 정보를 유출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형을 받은 드레퓌스 사건을 이야기하며 “작가 에밀 졸라가 이때 끝까지 드레퓌스의 결백을 밝히려 애썼던 점을 늘 기억해 왔다”고 말했다.
‘푸른 혼’은 사형당한 여덟 명의 인혁당 관련자들이 나오는 단편 여섯 편으로 이뤄져 있다. 김 씨가 사실(史實)을 진흙처럼 만져서 빚어낸 드라마들이 가득하다.
특히 훤칠한 얼굴에 헌헌장부였지만 모진 고문 끝에 만신창이가 돼버렸던 지사(志士) 형 인간 여의남(실제는 여정남)에는 작가의 애정과 아쉬움이 크게 배어 있는 것 같다. 제목부터 ‘여의남 평전’이라고 붙이고 평전 스타일로 써나갔다. 이 글의 말미에서 작가는 ‘대처승의 아들이었던 여의남이 육신을 철저하게 무(無)로 만들어 처형의 순간 해탈로 가려는 준비를 했다’ ‘등신불이 되기를 원하는 그는 어머니한테서 받은 팥알만 한 동자상을 목 너머로 삼켰다’고 묘사했다.
‘두 동무’는 친구 사이였다가 같은 날 처형된 이수병 김용원 두 사람의 간절한 의리를 다루고 있다. 둘은 몸을 찢어내는 고문이 시작된 다음부터 “니가 내를 안 만났으면 이 고생은 안하고 있을 텐데” 하고 서로를 측은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처형 전 그들이 나누는 말은 “괜찮다. 우리는 죽어서도 만낼 동무 아이가” 하는 것이었다.
인혁당 관련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것은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인 1975년 4월 8일 서대문구치소 운동장에서였다. 당시 수감돼 있던 시인 김지하 씨는 “눈이 아플 정도로 버드나무 꽃가루가 날아다녔다”고 회고한 바 있다고 김 씨는 전했다.
이처럼 말없이 받아들여야 할 죽음의 시간들을 묘사한 대목들은 이 글을 읽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폐인이 된 몸으로 이슬처럼 숨져간 그 청춘들이 가여워서일뿐 아니라, 그들이 그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 다잡는 비상한 각오들 때문이다.
김 씨는 “최근 콜롬비아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간의 고독’을 세 번째로 읽었는데 풍성하면서도 밀도 높은 이야기들에 다시 놀랐다”며 “(‘푸른 혼’은) 정치소설로서보다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갈 길’에 대해 쓴 것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올해는 인혁당 관련자들이 숨진 지 30주기가 되는 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