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캣우먼’이 섹스 어필에 실패한 까닭

입력 | 2005-02-02 18:23:00


‘골든 라스베리 상’은 해마다 ‘최악의 영화’를 뽑아 아카데미상 시상식 하루 전 시상하는 행사. 올해는 26일(현지시간) 거행되는 이 행사에 ‘캣우먼’(2004년 9월 국내 개봉)이 ‘최악의 영화’ ‘최악의 여배우’ ‘최악의 감독’ 등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흑인 섹시스타 할리 베리를 내세운 이 영화가 최악인 이유 중 하나는 캣우먼이 제값을 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 속 캣우먼이 하나도 섹시하지 않은 이유를 벗겼다.

①고양이로 다 될까?(할리 베리 vs 미셸 파이퍼)=깔끔하고 앙칼진 이미지를 가진 고양이. 그러나 ‘캣우먼’의 할리 베리는 고양이의 이런 분위기가 아닌, 습성(習性)을 흉내 낸다. 비린내 나는 참치 캔을 손으로 파먹고, 어항 속 관상어를 보고 입맛을 다시며, 일식집에서 미친 듯이 생선회를 집어먹고, 강한 번식력을 주체하지 못해 남자친구에게 군침을 흘린다. 이런 지저분한 행동은 리얼리티를 높이는 대신 캣우먼의 섹슈얼리티를 좀먹는다. 반면 ‘배트맨2’에서 미셸 파이퍼가 연기하는 캣우먼은 고양이의 행동 특성 중 일부를 빌려와 성적(性的)인 코드와 포개 버린다. 배트맨의 입술과 콧등을 혀로 훑어 올리거나, “목욕 좀 해볼까?” 하며 혀로 핥은 손등으로 머리와 얼굴 구석구석을 싹싹 닦아낸다(깔끔함).

헤어스타일은 이 두 캣우먼을 천양지차로 벌려 놓는 분수령. 영화 ‘캣우먼’의 할리 베리는 캣우먼이 된 후 앞머리를 길게 내린 숏컷으로 머리모양을 바꾸는데, 이는 이른바 ‘일진회’ 소속 불량 여고생들이 즐겨 찾는 ‘하위문화’ 스타일(사진1). 반면 ‘배트맨2’의 미셸 파이퍼는 곱창처럼 말리고 엉클어진 메두사형 머리를 통해 분열된 자아를 내비친다(사진2). 또 ‘캣우먼’ 속 캣우먼은 직접적이고 뜻이 얇은 대사와 “우우” “아아”같이 섹시함을 과대 포장하는 감탄사를 남발함으로써 상대에게 부담을 준다. ‘배트맨2’의 캣우먼이 섹스를 떠올리게 하는 중의적 대사를 사용해 상대방의 상상력을 살짝 부채질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②채찍으로 다 될까?(캣우먼 vs 원더우먼)=캣우먼이 남자들을 혼내 주려고 휘두르는 채찍은 사실 양면성을 가졌다.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에 직격탄을 날리는 페미니즘적 상징인 동시에, ‘저런 앙칼진 여자에게 맞고 싶다’는 남성들의 피학적 본능을 자극하는 마조히즘적 장치인 것. 하지만 이 영화 속 캣우먼의 채찍질에는 분노만 있고 유혹이 증발돼 있다(사진3). 채찍으로 때론 줄넘기를 하며 교태를 부리는 ‘배트맨2’의 캣우먼에 비하면 여유와 유머감각이 달린다.

남자들을 혼쭐내는 ‘줄’이라면, 1970년대 미국 유명 TV 시리즈의 주인공인 ‘원더우먼’이 차고 다녔던 황금색 밧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사진4). 남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붙들어 매는 원더우먼의 밧줄은 가혹한 ‘징벌’의 상징. 동시에 올가미는 포박당한 남자들에게 오직 진실만을 말하게 만드는 ‘교화 기능’도 갖고 있었다. 밧줄에 묶인 악당들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회귀한 듯한 나른한 표정으로 정신적 무장해제를 경험하는 것이다. 표독하기만 한 캣우먼은 몰랐던 걸까. 남자를 제대로 갖고 놀려면, 원더우먼의 오랏줄처럼 ‘냉탕’도 ‘온탕’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캣우먼’의 할리 베리구분‘배트맨2’의 미셸 파이퍼“나 요즘 이상해졌어. 그 남자만 보면 덤벼 들고 싶어.”
“난 때론 착한 여자가 되지만, 우우~ 아주 좋 아. 때론 표독한 악녀로 변하지.”대사“난 처음이니 살살해. 호호. 남자 맛 좀 볼 까….”(불량배가 다가오자)
“보기엔 딱딱한데 여긴 부드럽네.”
(배트맨의 특수복 복부를 어루만지다 갑자기 손톱을 찔러 넣으며)“우음” “웁스” “아아” “크르르” “캬악”감탄사“미야옹”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