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낯선 것, 그러나 매혹적인 것을 사랑했던 그때 그 시절 청춘들은 ‘모든 금지된 것들을 열망하며’ ‘흠집 많은 중고 제품들의 거리’를 서성이는 전형적 세운상가 키드였다. 더 도어스, 블랙 사바스, 밥 딜런, 퀸 등의 1970, 80년대 LP 앨범들. 사진 제공 함정임 씨
그때 막내오빠에게서는 낯선 냄새, 이방(異邦)의 냄새가 났다. 이방의 낯선 냄새는 낡고 헌, 네모난 것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루하루 오빠의 방을 채웠고, 오빠는 좀처럼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빠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외출하고 온 날이면 나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했다. 거기엔 한번도 본 적 없이 새로운, 그러나 이미 낡은 사진들이 있었고, 한번 들으면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낯선 소리들이 있었다.
막내오빠의 나이 그때 열일곱 살에서 스무 살, 시인 유하 식으로 말하면,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독한 마음의 열병’(‘세운상가 키드의 생애’)을 앓는, 그래서 ‘모든 금지된 것들을 열망하며’ ‘흠집 많은 중고제품들의 거리’를 서성이는 전형적 세운상가 키드였다.
나는 그보다 두 살 아래, 그를 장악한 마음의 열병이 여중생에서 여고생이 되어 가던 나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 웨이 투 헤븐’을 들으며 최초의 눈물을 흘렸고,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뜨거운 눈물이 내 가슴과 눈동자를 적시고 지나갔다. 오빠가 청계천 7가에서 8가, 일명 황학동 벼룩시장과 종로 세운상가 다리 위를 전전하고 온 날이면 나는 학교 가방을 내 던지고 오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언제까지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날 오빠가 구해 온 대부분의 보물들이 그 시대의 ‘금지된 것들’ 혹은 ‘등록을 거부한 해적판’들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들과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금기의 세계야말로 나를 전율시킨 최초의 시, 최초의 예술이었다.
오빠로부터 진추하를 알고, 로이 뷰캐넌을 알고, 짐 모리슨을 알았지만, 정작 나는 대학생이 되도록 세운상가에 가본 적이 없었다. 오빠가 묻혀 오는 그 거리의 알싸한 냄새와 진풍경을, 언젠가 오빠를 따라 가 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오빠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사정이 바뀌었다.
신촌에 있는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간 오빠가 아예 방에다 작은 방송국을 차려놓은 것이었다. 두 대의 턴테이블과 믹서를 갖춰놓고, 희귀 앨범, 금지곡에 목말라 있던 청춘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1980년대 초 막내오빠의 테이프 녹음곡 시대가 열렸다.
그 즈음 나에게도 새로운 세계가 도래했는데, 사관생도였던 큰오빠가 미국으로 원양 실습을 갔다가 ‘도시바’라는 일제 워크맨을 선물로 사다 준 것이었다. ‘흠집 많은 중고 제품들의 거리’, 그렇기 때문에 ‘한없는 위안’이 되어 주었던 세운상가는 가 보지도 못하고 안녕, 내 영혼을 울리고 웃겼던 LP 백판들 또한 1990년대 CD를 만나면서 안녕을 고하고 말았다.
그때 산처럼 쌓였던 오빠의 테이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날의 내 도시바 워크맨은…. 막내오빠의 방 한쪽 벽에는 아직도 그때의 LP들이 영원처럼 붙박여 있다. 순정은 세월로도 막을 수 없는 생의 마지막 보루인가. 오늘도 나는 막내오빠의 순정을 위해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는다, LP로!
소설가 함정임
○함정임은…
이화여대 불문과와 한산대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이 뽑혀 등단했다.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밤은 말한다’ ‘동행’ ‘당신의 물고기’, 장편소설 ‘춘하추동’ ‘행복’, 중편소설 ‘아주 사소한 중독’을 썼다. ‘만약 눈이 빨간 색이라면’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