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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데이트]‘피와 뼈’ 국내개봉 在日교포 최양일 감독

입력 | 2005-02-10 18:23:00

재일 한국인 김준평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은 영화 ‘피와 뼈’를 연출한 최양일 감독. 그는 “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자유로운 망상을 하고 살아야 제대로 된 영화감독”이라고 말했다. 권주훈 기자


재일교포 감독 최양일 씨(56)가 신작 ‘피와 뼈’(25일 국내 개봉)를 들고 14일 한국을 찾는다. 재일교포 작가 양석일 씨의 소설을 영화화한 ‘피와 뼈’는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폭력과 섹스만으로 거친 세상을 헤치고 살아간 ‘괴물 같은 인간’ 김준평의 일대기를 다뤘다. 일본의 배우 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김준평 역을 맡아 더 화제가 된 이 영화는 “동물적 에너지가 꿈틀거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일본 유력 영화전문지인 ‘키네마준보’ 선정 영화상에서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영화 개봉에 앞서 ‘한일 우정의 해’ 행사 참여를 위해 최근 내한했던 최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는 일본어로 진행하고 우리말로 통역했다.

―재일 한국인을 다룬 ‘피와 뼈’도 그렇지만 사회적 소수가 최 감독의 주된 관심사다.

“내가 소수자를 다루는 이유는 메인스트림(주류)에 비해 그들의 삶이 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의 인간관계에는 미움이 오간다. 이런 미움은 내가 영화를 만드는 모티브다.”

―‘피와 뼈’의 김준평은 오직 폭력과 섹스로 사회와 ‘대화’한다.

“섹스는 인간관계를 말해 주는 언어다. 폭력은 갈 데 없는 인간의 불만을 표현하는 언어다. 나는 이런 걸 통해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던지려 한다. 인간은 질서 속에 살 수도 있지만, 그 질서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아예 그 질서를 무시하고 살 수도 있다.”

배우 기타노 다케시와의 작업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최 감독은 “기타노도 나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감독의 위치가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대답했다. 이 말에 “기타노가 최 감독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었다는 뜻이냐?”고 되물었더니, 최 감독은 웃으며 한국말로 “맞아요”라고 답했다.

―최근 일본 내 한류(韓流) 열풍을 어떻게 보나.

“‘겨울연가’는 일본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정작 현실감이 없다. 내 아내도 ‘겨울연가’를 보더니 ‘어, 이건 한국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웃음) 이렇게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일본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다. 어떤 면에서 한류는 ‘오해’의 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의 문화나 정신을 수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류의 부산물로 일본에서 한국어 배우기 붐이 이는 현상은 한국을 알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바람직하다.”

―최근 한국의 젊은 감독들이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반면 일본의 영화는 정체된 느낌이다.

“박찬욱 작품 중에는 ‘올드 보이’를, 김기덕 작품 중에는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 홍상수 허진호 감독도 외국에 한국영화의 폭넓은 시각을 소개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젊은 감독들은 내성적이라고나 할까, 자기 마음속을 그린다. 일본의 젊은 감독들이 잊고 있는 폭넓은 세계를 지금 한국영화가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아, 이건 내가 한국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다.(웃음)”

최 감독은 자신의 영화세계에 대해 “나이가 들수록 난 거꾸로 가는 것 같다. ‘핀볼’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망상하면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게 내 운명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최양일 감독은

1949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1967년)에서 조감독을 했고 ‘10층의 모기’(1983년)로 데뷔했다. 재일 한국인을 비롯해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코미디로 만든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년), 폭력조직에 정보를 흘리는 형사와 그 주변인물을 다룬 ‘개 달리다’(1998년) 등 실험적인 문제작들로 일본 영화계에서 독보적 입지를 굳혔다. 현재 일본영화감독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