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패러디한 ‘학교대사전’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 사전에 따르면 ‘교과서’는 평상시엔 사물함에 처박아 두었다가 시험 때가 되면 한번 꺼내 보는 물건이고, ‘가치전도 현상’이란 개념을 익히려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개념을 익히는 것을 말한다. 우리 교육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낱말 풀이를 접하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지난해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결과 우리나라 중고교생의 읽기 수학 과학 수준이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이 뉴스가 됐다. 가슴 뿌듯한 얘기지만 연이어 드는 석연치 않은 생각은 중고교 이후의 경쟁력은 왜 떨어질까 하는 점이다. 사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대학 개혁은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최하위급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고, 그 기저에는 대학생들의 실력이 기대 이하라는 우려가 놓여 있다.
국제비교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최상위권이지만 학업에 대한 흥미도나 자신감은 최하위권이다. 학업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이 저조한 학생들의 경쟁력은 장기적으로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취도는 현재의 지표이고 흥미와 자신감은 미래의 지표라고 볼 때, 우리나라는 미래에 해당하는 대학생의 지표가 우울한 셈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고교에서 정점을 이루다가 대학에서 추락하는 원인의 일부를 학교 수업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교과내용의 적정화를 추구해 왔지만 여전히 수업에서 다뤄야 할 내용이 많다. 교사는 교과서에 빽빽이 들어찬 지식을 그대로 전달하기에도 바쁘고 학생들은 교사가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정련해 전달하는 내용을 무기력하게 수용한다. 그런 수업 대신, 현재의 앎의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상황이 주어지고 탐구와 토론의 상호작용을 거쳐 해결을 모색하는 가운데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내는 일련의 과정을 수업에서 경험한다면 어떨까. 학업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와 자신감이 충천해 대학에 진학하면 지적 호기심을 한껏 추구하면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수업이 이뤄지지 못하는 주 원인은 대학 입시다. 입시를 그대로 두고 중고교 수업의 변화를 논하는 것은 몽상가의 한가로운 판타지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입시 제도를 탓하면서 그것이 발목을 잡는 한 어떤 노력도 소용없다고 패배주의적인 태도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작지만 중요한 변화부터 모색해야 한다.
지식을 완결된 방식으로 쏟아 내는 교과서가 아니라 학습자의 자발적 사고와 참여를 유도해 배움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교과서로 바꿔야 한다. 또 학생들의 주체적인 사고가 체계적으로 상실당하는 권위적인 수업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발상과 비판적인 사고가 격려 받는 수업으로 변해야 한다. 그런 교육을 통해 배움이 주는 경이로움을 체험한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그런 때가 오면 기성세대가 죄책감 없이 읽을 수 있는 ‘학교대사전’ 개정판이 나올 수 있으리라.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