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26일 밤 서울 궁정동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결정적으로 바꿀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김재규는 왜·어떻게 박정희를 쏘았고, 박정희는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가’
최근 ‘10.26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블랙코미디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되고 과거사 청산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박 전 대통령 시해사건에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때에 ‘10.26사건’을 전후한 박 전 대통령의 24시간을 영화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월간조선사)가 출간됐다.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가 쓴 이 책은 당시 사건현장에 있었던 생존자들의 증언과 합동수사본부의 조사기록을 기초로 하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성과 고함과 비명속에서도 해탈한 듯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인 우리들의 영웅, 또는 超人!(초인)' 이라고 그리고 있다.
또 독자의 말을 빌려 “임상수 감독이 ‘그때 그 사람들’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 책을 보았더라면 영화 내용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날 밤 차지철 실장은 김재규 부장을 자극하고 약을 올리듯 막말을 했습니다.” “그 분(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에 맞기 전에는 ‘뭣들 하는 거야’하고 화를 내셨지만 총을 맞고서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어요. 체념한 모습이었는데 허무적이기 보다는 해탈한 모습 같았어요.” (신재순 씨 당시 대학생)
저자는 궁정동 현장의 세 생존자인 김계원(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심수봉(가수), 신재순(당시 광고모델 대학생) 씨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재현했다.
신 씨는 이 책에서 결정적 순간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함께 술을 먹던 김재규가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똑바로 되겠습니까?’라면서 바지주머니에서 총을 뽑아 (차지철을 향해)‘탕!’하고 쐈고 동시에 ‘김부장 왜 이래?’하며 차지철 경호실장이 피가 솟는 오른팔을 붙잡고 실내화장실로 뛰어갔다.”
“김재규는 두 번째로 앉아있던 박정희에게 총을 쐈고 가슴을 관통당한 박정희는 (옆에 있던 신씨에게 안긴채) 등에서 피를 콸콸 쏟았으며, 차 실장은 팔에 총상을 입고 실내화장실로, 김계원씨는 바깥마루로, 심수봉씨는 김재규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달아났다.”
이와 관련, 김재규는 법정에서 “차지철을 거꾸러뜨리고 식탁을 왼쪽으로 돌아 권총을 (가슴에 총을 맞아 신씨에게 안겨있는) 각하의 머리에서 50cm 거리에 대고 쏘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신 씨는 박 대통령의 최후 모습에 대해 “그 사람(김재규)의 눈과 마주쳤는데 인간의 눈이 아니라 미친 짐승의 눈이었어요. 그가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대었을 때 다음에는 나를 쏘겠구나 생각하고 화장실로 뛰었고 저의 등 뒤로 총성이 들렸다.”고 말했다.
“그날 밤 대통령은 좀 취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말이 헛 나올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피를 쏟으면서도 ‘난 괜찮아’라는 말을 또박또박 했으니까요. 그 말은 ‘난 괜찮으니 자네들은 어서 피하게’라는 뜻이었습니다.”
차지철 실장과 관련해서는 “(두 번째 총탄을 가슴에 맞은 뒤)일어서려다 ‘난 못 일어날 것 같애’라면서 쓰러졌는데 그 눈빛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날 제가 대기실에서 면접을 볼 때 술을 못 마신다고 했더니 그 분은 ‘옆에 깡통을 갖다 놓을 테니 거기에 부어 버려라’고 말하더군요.”라고 전했다.
저자는 사건 후 궁정동 작전을 지휘했던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두 여인(심수봉, 심재순)에게 각각 2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주고 차에 태워 집에 보낸 점 등을 들어, 이 사건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거사가 아닌 홧김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또 사건을 박정희의 18년 정치를 마감하고 13년의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킨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으로 해석했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