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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명성황후’… 볼거리 풍성, 인간미 표현 미흡

입력 | 2005-02-13 17:35:00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명성황후 10주년 특별 공연. 사진 제공 에이콤


본격적인 창작뮤지컬의 시대를 개척하며 막을 올렸던 ‘명성황후’가 22일까지 10주년 기념 공연을 갖고 있다.

연출자 윤호진 씨가 수정에 보완을 거듭하며 10년째 무대에 올리고 있는 이 뮤지컬에 관객들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을 가득 메우며 몰리고 있다. 무엇이 ‘명성황후’를 한국 문화계의 빅이벤트로 만들고 있는가?

우선 ‘명성황후’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식 ‘건달들의 연애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뮤지컬시장에 무거운 역사적 소재로 도전함으로써 뮤지컬의 지평을 확대했다. 광복 60주년, 한일수교 40주년이 되는 올해의 경우 그 시의성은 더욱 가치를 갖는다. 진실을 인정할 때 양국간에 진정한 우정이 가능하다면 이 극은 일본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직시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초연 때와 달리 이번 공연에는 일본 상인들과 게이샤들의 부도덕한 경제동물적 모습을 부각시킨 장면을 삽입했다. 또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를 준비하는 장면을 따로 설정해 보여주는 대신, 명성황후의 총명함과 진취성을 증명하는 장면을 무대 앞에 내세우고 그 뒤에서 만행을 준비하는 일본의 모습을 배경으로 처리해 대비시킴으로써 ‘조폭 국가’의 도덕적 파탄을 비웃고 있다.

‘한국적’ 볼거리가 풍성해진 것도 좋은 변화다. 명성황후를 지키는 홍계훈 장군의 무과시험 장면과 명성황후의 수태굿 장면을 추가해 한국의 무술, 무속신앙의 역동성과 아름다움을 덧입힘으로써 창작뮤지컬의 성격을 강화했다.

여기에 최형오의 감각적인 조명디자인, 김현숙의 현란한 의상디자인이 뛰어난 볼거리를 만들어 냈다. 또 무대미술의 박동우는 초연 때와 달리 태극마크를 연상시키는 이중 회전무대를 고안해냄으로써 많은 장면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수용했다.

이번 10주년 기념공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준조연급들의 가창력이 대체로 미흡하고, 특히 궁중파티 장면은 민망할 만큼 무기력하다. 더욱 중요하게는 텍스트가 여전히 명성황후의 정치적 고뇌에만 치우쳐 있어 그녀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건조하고 산문적일 수밖에 없다.

고루한 시아버지 대원군과 유약한 남편 고종 사이에서 고뇌하는 ‘정치인 명성황후’ 못지않게 시대를 불행하게 타고난 선각 여인의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는 ‘인간 명성황후’를 강화해 그녀에게 서정적이며 시적인 음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 그녀가 죽은 뒤 부르는 ‘백성이여, 일어나라’ 외에는 기억될 만한 멜로디가 없음도 문제 아닌가.

김윤철 연극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