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Ubiquitous·두루 퍼져 있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 라틴어를 부활시켜 세계적 화두로 띄운 사람은 미국 제록스 팰러앨토연구소의 마크 와이저 소장이다. 그는 1998년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제3의 정보혁명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유비쿼터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한다.
그 머리글자 U를 앞세운 조어(造語)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U시티, U라이프, U헬스, U비즈니스…. 한국 정부는 지난해 U민원서비스라는 말도 만들었다. 정보통신 전반에서 유비쿼터스 강국을 실현해 선진국 진입을 앞당기겠다는 U코리아 계획도 있다.
그러자 국립국어원은 유비쿼터스를 우리말로 바꿔 쓰자며 ‘두루누리’를 제시했다. 두루누리 도시, 두루누리 삶, 두루누리 건강…. 여기까지는 뜻이 통하고 유비쿼터스건 두루누리건 긍정적 희망적이다.
▼경제회복 발목 잡는 시장개입▼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립국어원의 제안을 무색하게 하는 용어가 등장했다. ‘유비쿼터스 핸드’다. 시장경제의 힘을 표현한 인비저블 핸드(보이지 않는 손)와 대칭되는 ‘언제 어디서나 시장에 개입하는 손’이라는 뜻이다. 출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2004년도 한국 정부와의 연례협의결과 평가보고서’다.
어제 신문 보도에 따르면 IMF는 “관료집단의 유비쿼터스 핸드가 한국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쯤 되면 유비쿼터스는 두루누리가 아니라 반(反)두루누리다. IMF는 한국 정부의 시장개입 사례와 문제점에 관한 최종 보고서를 곧 내놓을 예정이다.
마침 어제, 정부 여당은 대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을 조금 완화했다. 규제대상을 계열사 자산합계 5조 원 이상에서 6조 원 이상으로 줄이고, 부채비율 100% 미만 기업에 대해서는 규제를 1년 유예했다.
한마디로 웃긴다. 2001년 당시 경제부총리가 “출자총액규제를 앞으로 3년간만 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어겼기 때문에 냉소하는 게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이 투자 위축을 부채질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자본 기업 인적자원 시장 기술 등에 국경의 장벽이 거의 사라진 세계화 시대다. 이런 개방경제 아래서 ‘기업의 부도덕성’을 전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폐해를 미리 우려해, 국내 기업집단만을 상대로, 출자를 제한하는 정부와 정권은 한국밖에 없다. 비효율적 지배를 꾀하는 출자가 문제라면 시장의 감시 규율장치를 잘 가동하면 될 일이다. 이런 출자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는 최근 수년 사이 많이 도입됐다.
그런데도 자산이 5조 원이냐 6조 원이냐 하는 근거 박약한 ‘토종 고무줄잣대’를 들이대 누구는 규제대상, 누구는 면제대상으로 줄 세우는 게 시장개혁인가. 지난 3년간은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면 출자를 제한하지 않는 조항을 적용하다가, 지난해 말 슬그머니 이 조항을 없애기로 결정하더니, 어제는 1년만 더 봐주겠다고 생색을 내니 원칙이란 게 있는가.
김대중 정권 때 부채비율 100% 달성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기업 투자가 훨씬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약속을 승계해 출자제한을 없앴다면 역시 투자가 촉진됐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주장과는 달리 출자는 대부분 투자로 연결된다.
▼국민이 ‘개혁 장삿꾼’에 대응할 때▼
지난주 미국 상원은 기업에 대한 집단소송을 어렵게 하는 법안을 찬성 72 대 반대 26으로 통과시켰다. 집단소송제가 명분만 그럴듯할 뿐,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별 도움은 안 되면서 잘나가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집단소송 억제를 기업 관련 개혁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라면 이를 반(反)개혁이라고 목청 높일 소위 개혁파가 적지 않겠지만….
아무튼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지 않고(또는 따질 능력이 없어) 그저 ‘큰 놈과 될 놈 발목 잡기’를 개혁이라고 외치는 모습들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개혁 장사꾼’과 관료들의 유비쿼터스 핸드가 경제와 민생 살리기의 걸림돌임을 더 많은 국민이 더 확실히 알고 대응할 때가 됐다.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