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교육 당국은 중등과정의 독서교육을 대폭 강화해 5년 후부터는 대학입시에 독서활동을 반영한다는 계획을 짜고 있다. 언론매체들도 열심히 독서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독서가 이처럼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은 성장세대가 점점 책과 멀어지는 데 대한 불안감, 그리고 독서 빈곤이 위험사회를 초래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충분히 근거 있고 타당하다.
문제는 위기 타개의 방법이다. 교육 당국은 독서교육을 강화하겠다지만 공교육장에서 독서교육이 무너진 것은 학생들의 책 읽을 권리, 시간, 동기를 교육 자체가 박탈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아이들이 게임 중독에 빠져 심각한 ‘폐인 신드롬’을 보이는 동안 정보기술 산업의 어두운 그늘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다. 국민이 책 읽을 수 있는 공공 인프라와 콘텐츠 제공에 한없이 인색했던 것이 우리 역대 정부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의 독서활동을 지원할 변변한 법규 하나 없는 것이 우리나라다. ‘책맹(冊盲)’ 사회의 위기를 타개하자면 이런 조건들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당국의 독서교육 강화안은 위험 요소들을 안고 있다. 독서능력인증제, 독서력시험제, 독서활동기록제 등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인데, 이런 방법들은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책읽기가 또 하나의 시험과목으로 강요되면 독서교육조차 사교육 시장으로 넘어갈 것이 뻔하고, 아이들에게 책은 증오와 기피의 대상, 심할 경우 평생 원수가 될 수 있다. 자발성이 발휘되고 호기심 자극에 의한 발견의 즐거움이 경험될 때에만 교육은 성공한다. 독서교육은 더더구나 그러하다.
독서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경쟁력, 실용성 같은 것에만 연결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왜곡된 실용주의는 책읽기의 경우에도 점수, 입시, 성공 같은 ‘실리’를 계산한다. 실리도 물론 동기 부여의 한 요소다. 책을 읽어 성공하고 부자가 된다면 나쁠 것 없다. 경쟁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책읽기의 가장 중요한 실리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경쟁력, 곧 인격과 가치의 형성이라는 소득이다. 사회, 기업, 조직은 인격체이기 어려운 반면 개인은 인격체이고자 하며, 이 인격존재는 그의 삶을 안내하고 지탱할 기본 가치와 원칙들을 필요로 한다. 이런 원칙들을 부단히 만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이다. 인격존재를 지향하는 개인과 비인격적 사회조직 사이에는 가치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경우의 위기관리 능력도 근본적으로 인격에서 나온다. 물론 돈을 벌어야 살지만 그렇다고 “돈 되는 일, 성공에 필요한 일이면 모두 오케이”라는 지침만으로 행동원칙을 삼는 일은 아주 파괴적이다. 성적과 상장을 돈으로 거래하는 사태는 몰가치적 돈 지상주의가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잘 보여 준다.
해도 될 일과 안 될 일을 분별하는 자율능력의 발휘체가 인격이다. 몽테뉴가 시민의 ‘자기 법정’이라 부른 것도 그런 자율인격체다. 독서사회를 향한 우리의 집단적 노력이 이 인격존재의 대목을 망각하면 독서행위는 결국 자기 목표를 배반한다. 해법은 무엇인가. 경쟁력도 키우고 인격존재도 길러내는 일은 ‘두 마리 토끼 잡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실용과 즐거움을 결합하는 방법적 지혜를 모을 때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영문학·‘책읽는사회국민운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