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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약물에 취해’의 진실게임

입력 | 2005-02-15 17:51:00


세기의 이단아인가, 새빨간 거짓말쟁이인가.

80,90년대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쿠바 출신 호타준족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 파문이 연일 화제다. ‘약물에 취해(juiced)’란 제목의 이 책은 발간 첫날인 15일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불혹의 나이에 각 구단 트라이아웃 캠프를 기웃거렸던 그로선 돈방석에 앉게 된 셈이다.

중요한 것은 X파일의 내용이 어디까지 진실이냐는 것. 만약 모두 사실이라면 메이저리그는 94년 파업 때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게 분명하다.

일단 스스로를 ‘스테로이드의 대부’라고 지칭한 칸세코가 아무리 선수 시절부터 약물과 폭행을 일삼은 문제아였다고 해도 꾸며낸 얘기는 아니란 심증이 든다.

최소한 본인의 약물 투입은 진실일 것이다. 데뷔 4년째인 88년 최초로 ‘40홈런-40도루 클럽’을 열었고 2002년 초 은퇴하기까지 17년간 462홈런 200도루를 기록한 그가 명예의 전당 입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리는 만무다.

책 내용대로 94년 파업이 끝나자 홈런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마크 맥과이어와 배리 본즈가 나이가 들면서 홈런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브래디 앤더슨같은 선수는 10년간 한해 20홈런 치기도 벅찼지만 96년 갑자기 50홈런을 날렸다.

칸세코는 텍사스 구단주를 지낸 현직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도널드 퍼 선수노조 위원장에게까지 직격탄을 날렸다. 백인의 우상인 맥과이어를 건드려 인종문제로 비화된 것을 비롯, 수많은 법정소송이 예상되는데도 화끈한 폭로전을 펼친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 때문인지 미국인 60% 이상이 뉴욕 포스트의 설문조사에서 칸세코를 믿는다는 답을 던지고 있다.

실명 거론 당사자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것도 의문. 맥과이어는 책이 발간되고 난 뒤 인터뷰는 사양한 채 이메일을 각 언론에 보내 혐의를 부인했다. 아직 그 누구도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노조는 아예 입을 닫고 있다. 워낙에 중대 사안인지라 일단은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