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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서현]알프스 산맥에도 터널 뚫는데…

입력 | 2005-02-15 18:08:00


세상이 여전히 이처럼 풍지다. 굴착기 소리로 시끄럽던 국토는 환경의 결투로 소란하다. 시대는 건설의 참회록을 요구하고 있다. 불도저를 전차처럼 몰면서 국토를 전장처럼 휘젓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싸우면서 건설하던 때에 토론은 무의미했고 결론은 신속해야 했다. 유적도 자연도 파고 엎던 시대였다.

우리 사회는 토론보다 결투를 앞세운다. 토론이라는 명목의 방송에서는 양쪽으로 갈라 앉아 말의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여 준다. 대척점에 세운 상대를 모욕과 모략으로 굴복시키려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 사각탁자에서 이편저편 갈라 앉는 것은 내 몫을 챙기려는 협상에나 적당하다. 토론은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진행하는 것이다.

반동인지 빨갱이인지를 구분해야겠다는 유서 깊은 이분법은 환경 문제에서 유독 극명하다. 개발론의 주구인지, 환경론의 광신도인지 이마에 명찰을 붙여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연은 선이고 도시는 악이라는 이분법이다. 개발은 이기적이고 보존은 이타적이라는 도식적 사고도 근거 없고 섣부르다.

▼개발은 악, 보존은 선?▼

환경을 바꾸는 것은 다음 세대를 전제로 한 작업이기에 중요하다. 그러나 바다를 제물로 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새만금 사업의 타당성은 아무리 고쳐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 30년 만에 인구가 반으로 줄면서 몰락한 기존 도시를 옆에 두고 바다를 매립해 새 도시를 만들자는 제안도 설득력이 없다. 국토의 구석구석이 레저관광과 민자 유치와 개발이익 확보의 대상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어이 준공하느냐, 모두 철거하느냐의 이분법에 의한 결단이 아니다. 들인 돈이 아까워 계속해야 한다는 건 내일이 없는 도박장에서나 듣는 이야기다. 이미 만든 구조물을 이용해 전대미문의 해상공원을 만들든, 풍력발전 기지를 만들든 아직도 더 많은 토론과 대안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내건 공약을 모두 실천해야 한다고 하려면 다음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라 종교인 중에서 뽑아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널리 들리지 않는다고 목숨을 담보로 삼는 것은 종교인이 아닌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무기다.

이런 중요한 사업을 진행할 때는 신중한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산을 돌아가는 우회노선이 산을 뚫고 가는 터널보다 더 환경친화적이라는 전제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2011년 준공을 목표로 길이 57km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고속철도 터널을 뚫고 있는 곳이 있다. 고타르트 베이스 터널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은 세계 최고의 환경국가라는 스위스이고, 터널이 뚫고 가는 곳은 알프스 산맥이다. 산천을 망가뜨리고 생태계를 찢어 놓는 것은 산을 타고 도는 도로들이다.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고 미시령, 한계령 길을 폐쇄해야 설악산의 잘린 생태계도 이어지고 상처 난 환경도 추슬러진다.

터널이 지하수를 고갈시키리라는 막연한 판단과 그에 근거한 막무가내의 반대가 환경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탐욕이다. 미지근하다면 덥혀서라도 온천수로 팔아먹겠다고 설악산에까지 구멍을 내고 지하수를 퍼내겠다는 그런 탐욕이다. 씻어내야 할 것은 살가죽이 아니고 탐욕스러운 마음이다.

▼대안없는 환경론 이제 그만▼

반대는 쉽다. 수력발전은 생태계 침수로, 화력발전은 화석에너지 고갈과 탄산가스 배출로, 원자력발전은 방사능 누출로 위험하다고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전원 플러그를 뽑고 살지 않겠다면 우리는 대안을 찾고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도롱뇽이 중요하다면 산새도 들짐승도 중요하다. 킬리만자로에 올라서서 얼어 죽은 표범의 이상만큼 시체 속을 헤매다 굶어죽은 하이에나의 현실도 중요할 수 있다. 터널을 파건 막아서건 사람의 존재도 중요하다. 우리에게 아쉬운 것은 터널이 반환경적이라는 예단이 아니라 환경 피해가 적은 터널의 탐구다. 필요한 것은 결연한 진행이나 결사적 반대가 아니고 합리적 대안이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