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를 한방으로 잡자’는 홍보 포스터로부터 비롯된 양·한방 의료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19개 개원의협의회가 ‘한약 부작용 줄이기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했고 개원한의사협회 측은 이에 맞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더욱이 대한내과의사회 회장이 “한방을 비방하는 포스터를 떼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사건은 확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도 양측의 원색적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의사 측은 “한방은 신비주의 가면을 쓴 사기”라며 공격하고, 한의사 측도 “의사들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맞받아친다.
싸움에 임하는 양측은 모두 “국민을 위해 불가피한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설전(舌戰)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 누리꾼(네티즌)은 “실력으로 경쟁하라”고 양·한방을 모두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사실 ‘밥그릇 싸움’ 아니냐. 역겹다”고 꼬집었다.
양측은 2003년에도 ‘침 전기 신경자극치료’와 ‘근육 내 자극치료법’을 누가 시술할 수 있느냐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러나 암이나 만성질환 등 중병에 대한 치료 영역을 놓고 충돌한 적은 없다. 양측 모두 치료가 쉬우면서도 돈이 되는 가벼운 질환에 대한 치료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200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감기라는 단일 질환에만 1650억 원의 보험급여비를 지출했다. 각종 암 치료에 지급된 급여비를 모두 합쳐도 6600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감기가 얼마나 큰 ‘밥그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일부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양·한방 협진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좋다. 환자에게 의사 선택권을 주고 양측이 협조하니 진료의 질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 바로 이런 모습을 의료계에 기대하고 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국민은 특히 의료계의 상생(相生)을 바라고 있다. 의사와 약사의 충돌로 인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한의사와 약사 간의 오랜 영역 다툼, 의사와 한의사 간의 기(氣)싸움에 국민은 지칠 대로 지쳤다.
김상훈 교육생활팀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