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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클로저` 마초근성을 벗긴다

입력 | 2005-02-16 18:50:00


《여성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 스트립 댄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 신문기자 댄(주드 로), 피부과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 등 4명의 남녀가 벌이는 복잡한 4각 관계를 통해 ‘사랑에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소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 ‘클로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자기과시적인 남자 래리는 3개의 황당무계한 행동을 보인다. 이는 래리가 미친 녀석이어서 일까? 아니다. 래리는 마초 남성의 수컷본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래서 ‘인간수컷 대탐험’ 가이드로도 유용하다. 여자들이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래리의 3가지 행동, 그 원인을 밝힌다.》

① 남자는 왜 먼저 고백할까

결혼 후 첫 출장을 다녀온 래리는 아내인 안나가 묻지도 않았는데 덜컥 털어놓는다. “나 창녀랑 바람 피웠어. 미안해.” 래리는 “왜 얘기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대답한다. “속일 수 없었어. 당신을 사랑하니까.” 정말 아내를 사랑해서일까.

천만에. 반대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남자는 ‘고백의 동물’. 남자가 바람을 피워 신경정신과를 찾은 위기의 부부 중 80%는 아내가 어림잡아 물어보거나 심지어 묻지 않았는데도 남편이 순순히 고백한 케이스라고 한다. 구체적 외도 증거를 들이대도 열이면 열, 극구 부인하는 외도 아내들의 행태와는 정반대다. 이는 남자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의존성’ 때문이다.

어린애가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일부러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처럼, 남자들은 ‘나 바람 피웠어. 나쁜 짓 했어.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해줄 거지?’ 하며 아내에게 기대는 동시에 아내의 사랑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려는 충동을 갖고 있는 것.

② 남자는 왜 장소와 횟수에 집착할까

외도 사실을 고백했다가 오히려 아내가 댄과 혼외정사를 가진 사실을 알게 된 래리. 그는 표변해 아내를 집요하게 추궁한다. “그놈하고 좋았어?” “나보다 잘 해?” “저 소파 위에서도 했어?” “언제 여기서 했어?” “절정까지 갔어?” “몇 번이나 (절정까지) 갔어?” 아내의 외도 사실로도 충분히 충격 받았을 법한 남편은 왜 이런 구체적 질문을 아내에게 던지고 또 솔직한 대답(“했어요” “두 번” 같은)을 요구하면서 더 큰 상처를 받으려 기를 쓰는 걸까.

마초적인 남자는 섹스를 관계가 아닌 승부로 본다. 섹스는 이기지 못하면 지는 처절한 승부의 세계인 것. ‘여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다른 수컷에게 빼앗긴다’는 강박 때문에 상대가 나보다 잘 하는지를 정말 궁금해 한다. 또 개들이 여기저기 오줌을 지려서 제 영역을 표시하는 것처럼 남성은 정액을 뿌려 소유권과 영역을 표시하고픈 욕망을 갖고 있는데, 래리가 아내와 첫 섹스를 나눈 바로 그 소파에서 아내가 외도를 했는지를 파고드는 것도 ‘영역 침범’을 경계하는 수컷심리에서다. 하지만 아내의 대답을 통해 드러나는 여성의 섬세한 성 심리는 오직 승패개념에만 집착해 있는 래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놈이 나보다 더 잘 해?”(남편) “(잘 한다기보다는) 달라요.”(아내)

③ 남자는 왜 마지막 섹스에 매달릴까

이혼서류에 서명해 달라는 아내 안나의 요구에 남편 래리는 말한다. “조건이 있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섹스해 줘. 날 경멸해도 좋아. 내 창녀가 돼 줘.” 곧 남이 될 아내에게 섹스를 요구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내가 곧 ‘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의 소유가 될 여자를 ‘욕 보인다’는 심정으로 승리감을 만끽하려는 가학적 수컷본능. 극중 아내는 남편의 요구에 응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이 경우 섹스를 보는 남편과 아내의 시각은 180도 다르다. 남편은 ‘섹스를 통해 아내를 오염시켰다(섹스=목적)’고 굳게 믿는 반면, 아내는 ‘섹스를 통해 이혼과 자유를 찾는다(섹스=과정)’고 여긴다. 아마 아내는 남편과의 마지막 섹스 중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쳇, 역시 넌 이래서 안돼!’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