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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라이트]4부北 인권문제 대응방법은

입력 | 2005-02-17 18:22:00


《본보가 점화시킨 뉴 라이트(New Right) 운동의 어젠다 가운데서도 북한의 인권문제는 진보진영과 가장 시각이 뚜렷이 엇갈리는 핵심쟁점이다. 뉴 라이트 운동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국가와 민족, 체제를 뛰어넘는 보편적, 최우선적 가치라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적 좌파진영의 지식인들은 인권문제로 남북관계가 훼손돼서는 안 되며 경제지원을 통해 인권개선의 토양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현 정부의 입장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압력이 고조됨에 따라 이 사안은 점점 진보진영의 ‘아킬레스건’이 돼 가고 있다. 본보는 뉴 라이트의 입장을 대변하는 윤여상(尹汝常)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과 진보적 입장인 김근식(金根植)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를 초청해 2일 본사 14층 회의실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북한 핵 보유 선언에 대해서는 추후 따로 두 사람의 의견을 물어 포함시켰다.》

○ 북한 인권문제의 배경과 실태

▽김근식 교수=북한은 체제안보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여기에다 극심한 경제난까지 겹쳐 인권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광복과 분단, 체제구축 과정을 거치며 항상 외부의 적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의식이 북한 정권에 뿌리박혀 있다. 주민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윤여상 소장=사회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권리가 억압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옛 동유럽처럼 경제, 문화적 권리가 상당부분 보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수령체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를 모두 보장하지 않고 있다.

○ 북한 인권에 대한 접근 방식

▽김=정부의 방침은 ‘인권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줘선 안 된다’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경제난과 안보 우려를 동시에 해결해 인권 개선의 토양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정부가 북한의 인권 개선에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 장애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 아닌가. 특히 국군포로 등 남북한 정부가 직접 관련된 사안은 당사자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유엔 등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우회적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김=정치적, 시민적 권리도 중요하지만, 먹고살 수 있는 권리가 가장 중요하다. 대북 경제지원과 개혁개방 유도만이 장기적으로 북한 인권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자생적 민주화와 인권 향상을 위해서는 경제 회생이 필수적이다.

▽윤=박정희(朴正熙) 정권 때 인권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당시 박 대통령이 내세운 논리를 답습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우리가 개발독재 과정에서 인권을 무시했기 때문에 지금 겪고 있는 과거사 갈등을 미래의 북한은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탈북자의 존재 자체를 북한체제의 부도덕성과 억압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북한 체제의 변화가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식의 접근법은 경계해야 한다. 생계형 탈북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북지원과 식량난 해소가 해답이다. 남북화해협력의 증대를 통해 북한이 경제를 회생시키고 체제를 안정시켜 스스로 변화와 발전의 길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윤=인권문제나 탈북사태를 이유로 인도적인 대북지원마저 끊자는 게 아니다. 대북지원과 동시에 인권문제도 적극 제기하자는 것이다. 경제지원이 탈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인권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탈북 러시는 계속될 것이다.

○ 유엔 결의안과 미국의 북한인권법

▽김=유엔인권위원회의 대북 결의안에는 식량지원을 우선해야 한다거나 북한의 체제보장이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이 없다. 이런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우리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윤=북한 인권문제에 우리가 소극적이면, 다른 어떤 나라가 적극 나서겠나. 인권결의안 추진 과정에 정부가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가 북한 인권문제에 관해 국제적으로 소외되고 실질적인 도움도 주지 못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김=이라크 이란 쿠바에 대해 미국은 인권을 명분으로 체제 붕괴를 노린 전례가 있다. 북한인권법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이 이 법을 압박용으로 사용하면 대결구도를 악화시켜 인권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안보 상황이 열악하면 인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게 일반적 관례이다.

▽윤=북한인권법의 의도에 대해 진보진영이 왜곡 과장하는 측면이 있다. 최초 법안에서 체제 위협으로 오해될 수 있는 조항은 대부분 삭제됐다. 이 법은 오히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모두 고민하도록 하는 긍정적 효과를 갖고 있다. 북한이 식량분배나 유엔의 인권문제 제기에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

▽김=미국이 북한 핵무기 보유 선언에 대해 개의치 않는 상황인데 정부가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북한은 위기를 고조시켜야 미국이 협상테이블로 나온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북한이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동원했는데도 미국은 꿈쩍도 않고 있다. 이제는 남한이 나서서 핵 포기를 설득해야 한다.

▽윤=핵 보유 선언은 북한 외교의 특징인 벼랑 끝 전술이다. 이번 사태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의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 북한의 핵과 인권문제가 동시에 뜨거운 이슈로 제기되면 인권은 후순위로 밀릴 우려가 있다. 미국이나 국제사회, 국가 간 관계에서는 북한 핵이 더 중요할지 모르지만, 북한 주민에게는 인권이 시급한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냉전 녹인 헬싱키협정▼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권 문제에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1975년의 헬싱키 협정이 그 해답이다.

헬싱키 협정은 동서(東西) 양 진영의 체제 대결이 한창이던 때 동·서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한 다자협의체(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합의한 국제협약이다. 서방이 동유럽의 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동유럽은 국내 인권을 개선하라는 게 핵심 내용. 장기적으로 동유럽의 인권을 개선하는 효과를 불러왔고, 결국 체제의 전환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 전후해 동서 양 진영은 안보, 경제협력과 함께 인권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했고 상대방에 대한 영토 및 체제 인정을 대가로 동유럽의 인권 향상을 합의문에 포함시켰다. 헬싱키 협정을 바탕으로 서방 국가는 동유럽에 인권 문제를 공식 제기하면서 인권 향상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다. 헬싱키 협정은 체제간의 대결 구도에서 어느 한쪽이 느끼는 안보와 체제상의 위협,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시켜 주면서 인권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북한의 경제난과 열악한 인권 상황 △북한의 인권에 대한 국제적 관심 고조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한 북한의 ‘체제 흔들기’라는 반발 △6자회담이라는 다자협의체의 존재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적 틀 마련에 헬싱키 협정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여상 소장은 “한국과 미국, 일본이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만큼 헬싱키 협정 때와 비슷한 여건은 이미 조성됐다”고 말했다.

김근식 교수는 “다자 틀을 활용해 안보와 경제, 인권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