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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앰배서더 Really?]입과 항문없는 동물 아시나요?

입력 | 2005-02-17 19:14:00


동물은 먹어야 산다. 그런데 입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소화기관이 없는 동물이 있다. 세포 하나로 이루어진 원생동물이나 하등한 동물 이야기가 아니다. 다 자라면 길이 2∼3m 정도 되는, 심해에 살고 있는 관벌레가 그 주인공이다.

심해는 빛이 없는 암흑의 세계이다. 식물이 살 수 없으니 당연히 동물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실제로 먹이가 부족한 심해는 동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흔히 사막에 비유된다.

1977년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심해유인잠수정 앨빈은 동태평양 갈라파고스제도 근처 수심 2700m 심해를 탐사하다 뜻밖에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열수분출공 주변에 관벌레가 밀집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관벌레는 단백질의 일종인 키틴으로 만들어진 단단하고 긴 관 속에 산다. 붉은색의 아가미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립스틱처럼 보인다. 과학자들은 관벌레에게 입 창자 항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의아해 했다. 도대체 관벌레는 어떻게 먹이를 먹을 수 있을까.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들은 몸 안에 공생하는 박테리아 때문에 살 수 있다. 박테리아가 열수분출공에서 나오는 황화수소를 이용해 만든 영양물질을 관벌레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마치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을 해서 만든 영양물질로 생태계를 부양하는 것처럼.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문다. 관벌레는 입이 없는데 박테리아가 어떻게 몸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사실 어린 관벌레는 입과 창자가 있다. 자라면서 소화기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박테리아는 어린 관벌레의 입을 통해 들어가 몸속의 영양체라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관벌레는 자신에게 영양물질을 주는 박테리아를 위해 황화수소를 공급해 준다. 생물이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인 심해에서 서로 돕고 사는 상생의 지혜를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우리의 이기적인 삶을 되새겨보게 된다.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wskim@kor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