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인가 민족주의인가. 두 개의 노선 가운데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둘러싼 논쟁도 뉴 라이트(New Right) 운동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뉴 라이트 진영은 범(汎)지구적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시장경제와 개방주의만이 세계 12위 무역대국인 한국의 경제가 나아갈 길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세계화에 비판적인 민족주의자들은 외국 자본에 맞서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개방과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오문석(吳文碩·46) LG경제연구원 상무와 민족주의적 이해를 우선시하는 조원희(趙元熙·49) 국민대 교수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8층 회의실에서 이 문제에 관해 대담을 가졌다.》
○ 세계화의 실체
▽오문석 상무=사람, 돈, 상품 등 경제적 자원이 국가적 장벽을 넘어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가는 세계화는 모든 국가에 풍요를 약속하지는 않지만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우리 경제는 1970년대 이후 경제발전 과정에서 세계화를 통해 급속히 성장했고 세계적 기업도 배출했다. 뉴 라이트 운동의 지향점은 바로 시장경제와 세계화에 대한 개방이다.
▽조원희 교수=1980년대 이후의 세계화는 시장의 효율성과 경쟁력만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신자유주의적 특성을 지닌다. 무차별, 무제한적인 세계화는 미국 등 선진 강국이 자본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의도한 정책의 결과일 뿐이다.
○ 자본의 국적성과 국가 이익
▽조=한국인의 것은 선이고, 외국인 소유면 악이라고 보는 구좌파의 시각은 잘못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외국인 소유 기업이 우리와 운명공동체라고는 보기 어렵다. 외환위기 뒤 들어온 자본의 90%는 단기간에 이익을 챙겨 나가는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이었다. 따라서 장기적 투자나 고용 창출에는 관심이 없다. 뉴브리지캐피탈이 제일은행을 팔아 1조2000억 원,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팔아 7000억 원을 각각 남겼지만 세금을 한 푼이라도 냈나. 투기자본은 투자 부진, 비정규직 증가의 원인이기도 하다.
▽오=나는 다르다고 본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2%인 170조 원이 외국 자본인데 투기성 자본은 10∼20% 정도고 나머지는 장기 투자다. 이들은 경영권보다는 기업 성장에 따른 배당과 이익에 관심이 많다. 1992년 주식시장 개방 후 지난해까지 2000년을 제외하면 해외 유출보다 유입이 더 많았다. 이들의 투자로 기업 부채비율을 크게 낮춘 것을 고려하면 투자 부진과 비정규직의 증가도 외국 자본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조=투기자본은 오히려 경영보다 이익에 집중한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 기업의 생산성과 주식의 가치를 올린 뒤 이익을 빼내 가면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종업원, 고객, 지역사회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 집단)의 이익이 희생된다.
○ 외국자본과 금융기관의 공공성
▽오=공공성이 큰 금융기관은 외국 대주주의 요건과 적격 심사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는 투기성 자본에 한정해야 한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취약한 우리 기업의 현실을 볼 때 미국 유럽에 방어수단으로 있는 독소조항이나 다중의결권 등은 허용할 필요가 있지만 부실기업에 대한 적대적 M&A가 오히려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순기능도 있다.
▽조=적대적 M&A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외국의 투기성 자본과 우리 대기업이 결탁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나눠먹기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권은 보장해 주되 더 강력한 사회적 통제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독일처럼 노조, 채권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대표가 참여하는 감독이사회 같은 제도도 좋다.
○ 국내기업의 해외 진출
▽조=규제가 많아 기업이 해외로 간다는 건 핑계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규제가 없어도 어차피 나간다. 일자리 문제는 외국 자본이 불러온 투자 위축 때문이며 고용 불안과 비정규직 증가도 주주의 이익만 가장 우선시한 데서 비롯됐다.
▽오=국내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GM과 해외로 진출한 우리 기업 중 누가 더 국가 경제에 기여하나. 국내에선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고, 저부가가치 산업은 개발도상국으로 나가는 게 좋다. 일자리 창출은 산업경쟁력 강화로 풀어야 한다.
○ 정부의 자유무역협정 추진
▽조=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상대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 또 기업의 이윤은 올라가지만 임금이나 고용 사정은 나빠진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참여한 캐나다의 경우 10년간 생산성은 2% 늘어났지만 임금은 0.4% 증가에 그쳤고 실업률도 8.6%까지 올라갔다.
▽오=FTA는 무역 창출, 투자 증대의 효과가 크다. 1994년의 NAFTA 체결 이후 멕시코의 대미 수출이 10년간 3배 늘었다. 소비자 후생도 증대된다. 중국은 전 세계의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소비자 천국이다. 또 투자가 늘면 고용도 는다. 우리 일부 산업이 피해를 보겠지만 효율적인 자원 배분의 효과가 적지 않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이 FTA를 맹렬히 추진 중인데 우리만 안 할 경우 수출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겠나.
○ 외국의 농업개방 요구
▽조=시장원칙에서 보면 쌀은 경쟁력이 없어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농업은 식량안보, 환경, 농촌의 공동체 유지와 같은 사회적 가치들을 내포하는 만큼 규모는 축소하되 소득의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주면서 적절히 지켜가야 한다.
▽오=지금까지 농업개방을 지연해 오고 정부가 보조해 왔지만 문제가 해결됐는가. 어차피 개방으로 가야 한다면 신속히 장기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농민복지 문제는 지역경제 활성화나 기업도시, 고부가가치 농업 육성 등의 대책으로 풀어야 한다.
정리=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한국 FTA 현주소▼
자유무역협정(FTA)은 세계화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중의 하나다. 한국이 현재 FTA를 체결하고 있는 나라는 칠레와 싱가포르. 칠레와의 FTA는 2002년 11월 체결 뒤 지난해 4월 발효됐다. 싱가포르와는 지난해 11월 협정을 체결해 이르면 올 7월 FTA가 발효될 전망이다.
2003년 12월 시작된 한일 FTA 협상은 일본 측의 한국 김 수입쿼터 축소 움직임과 농수산물 관세 인하에 대한 소극적 태도 때문에 지난해 11월 6차 교섭 이후 협상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
정부는 지난달 18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과의 협상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23개국과 FTA 관련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EFTA, 일본, 캐나다와는 올해 내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EFTA와의 협상이 가장 먼저 타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칠레 FTA 발효 후 양국의 교역물량은 큰 폭으로 증가해 지난해 한국의 대(對)칠레 수출액은 7억900만 달러, 칠레산 물품의 수입액은 19억3200만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수출은 FTA 발효 전인 지난해 1∼3월 월평균 4500만 달러였으나 발효 이후엔 6400만 달러로 40% 이상 늘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자유무역협정(FTA):
둘 이상의 국가가 상호 무역 증진을 위해 물자나 서비스 이동을 자유화시키는 협정으로 시장통합 성격의 특혜무역협정. 협정 발효와 동시에 모든 품목을 무관세화하는 게 원칙이지만 국방 등 특수 분야 및 품목의 예외를 인정하기도 한다. 미국, 유럽연합(EU),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멕시코는 10개국 이상과 FTA를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