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성나게 하지 말라.’ 만일 로런스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총장이 그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앞으로 이런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살지도 모른다.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가 급기야 사임위기에까지 몰리게 돼서다. 파문은 서머스 총장이 지난달 14일 한 비공개 컨퍼런스에서 “여성은 선천적으로 과학적 재능이 떨어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17일에야 공개된 정확한 발언 내용은 예상만큼 놀랍거나 여성 비하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과학 분야의 최고 위치에 왜 여성이 적은지,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여러분을 성내게 하기 위해 말하자면, 문화적 요인이나 성차별보다는 남녀간의 내재된 차이가 가족들의 압력, 고용주의 요구와 함께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과학 공학 기술 쪽에서 일하는 여성은 전체 인력의 20% 정도다. 여성 과학자들은 고위직에 많지 않은 까닭에 평균임금도 남성이 1달러라면 여성은 77센트일 만큼 적다. 그 이유로 여성 과학자들이 첫손에 꼽는 것이 육아부담이다. 발달속도가 유난히 빠른 과학 동네의 특성상, 잠깐만 아기 낳고 나와도 뒤처질까 겁나는 실정이다. 살아남으려면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선 일을 줄이거나 가정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이런 ‘장애’가 가족의 압력, 고용주의 요구, 그리고 남녀 차이가 아니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서머스 총장이 여성의 열등함을 말한 것은 아니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의 개인적 편견이 대학 행정에 반영됐는지는 따져볼 일이되, 여성들은 정확히 전달되지도 않은 발언을 놓고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결국 ‘남녀 차이’를 드러낸 셈이 됐다. 모든 문제를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육아부담을 비롯한 가족의 압력, 고용주의 요구 문제는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엔 일리가 있다. 그래야 유능한 여성 과학자도 사라지지 않고, 선진국 인구도 더 이상 줄지 않는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