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대모에서 자연을 따르는 ‘산사람’으로 변한 조화순 목사는 자신의 마지막 임무가 생명운동이라고 고백한다. 민동용 기자
■‘낮추고 사는 즐거움’낸 ‘노동운동 代母’ 조화순 목사
그는 투사였다. 1976년 똥물이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현장에서도,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던 법정에서도 조화순 목사(71·여)는 자신의 소신을 굽힌 적이 없다. 을러대던 수사관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렇게 당당하냐”고 화를 내면 “어디긴 어디야, 사람 사는 데지” 하고 맞받아쳤다.
그런 그가 이제 산사람이 다 됐다. 1970∼80년대 도시산업선교 현장에서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했던 한국 노동운동의 대모(代母) 조 목사는 1996년 13년간 목회했던 경기 시흥시 달월교회를 나와 강원도 평창군 봉평 태기산으로 훌쩍 떠났다.
해발 750m의 산자락에서 자신의 손으로 흙집을 짓고 유기농을 하며 사는 조 목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낮추고 사는 즐거움’(9500원·도솔)을 최근 펴냈다.
“세상이 변한 만큼 나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더 낮은 곳에서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깨달았습니다. … 그것은 다름 아닌 땅의 문제이고, 환경의 문제이고, 생명의 문제라고 보았죠.”
결혼하지 않은 그는 이곳에서 나름의 사연을 지닌 20여 명의 여성들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고추농사도 하고, 신선한 고랭지에서 자라는 100여 가지 산야초를 1년 이상 땅에 묻어 발효시킨 ‘산야초 효소’라는 음료도 만든다. 여성노동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조 목사는 여성노동자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과거를 다루고 있다. 당시 그의 주위에서는 “조 목사가 너무 과격하다”고 비난했다. 조 목사는 “여공들에게 똥물을 뒤집어씌우고 항의하는 여공들의 머리채를 개 끌듯이 끌고 가는 그 참혹한 현장을 봤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조 목사는 자연에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꽃사과나무의 가지 하나를 잘못해서 부러뜨렸을 때 나무의 아픔이 내 팔의 고통으로 느껴지는 체험’을 하면서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물마시고 졸리면 자는’, 자연을 순순히 따르는 삶을 살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