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앞으로 다가온 새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거부권 행사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는 양승태 후보자의 성향과 개혁성을 문제 삼지만, 실제로는 최근 여당 소속 의원들에게 잇단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선고를 내린 법원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여당 의원들의 이 같은 태도는 올해와 내년에 대법원장을 포함해 11명의 대법관이 교체되는 사법 대(大)변혁기를 앞두고 사법부를 견제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사법부의 ‘서열주의에 따른 관행 인사’와 ‘보수 성향 판결’에 브레이크를 걸고, 개혁성향의 인물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각인(刻印)시키겠다는 의도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는 법치주의에 대한 부정이자 삼권분립의 근간을 해치는 행위다. 정치권이 집권 세력의 코드를 기준으로 대법관을 임명한다면 사법부는 과거 독재정권에서처럼 정치권력의 시녀 노릇을 면치 못할 것이다.
청문회는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및 도덕성을 검증하는 자리다. 따라서 의원들은 양 후보자의 법률적 전문성과 판결 내용 등을 철저히 청문해 대법관으로서의 업무 수행에 적합한지 여부를 엄정하게 가리면 된다. 집권 여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맞춰 대법관 인선 및 임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것은 ‘정치 재판’ 못지않게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권 및 시민단체가 대법관에게 특정 이념을 요구하거나, 특정 성향의 인사들로 대법원이 채워지게 된다면 이 또한 나라의 장래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법부도 정치권의 부당한 간섭과 위협에 대해서는 단호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