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대학의 ‘다양화와 융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유럽경영대학발전협회 회의에서 경영대학장들이 논란을 벌이다가 모두 기꺼이 동의한 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기업보다 경영이 훨씬 힘든 조직이 대학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곳이 경영대학이라는 것이다. 언뜻 경영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경영대학이 가장 잘 경영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경영이 기업경영보다 어렵다고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교육은 특성상 시장원리를 적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교육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제조업과 달리 최종 산출물에 대한 비교 평가가 어려워 시장원리에 의해 경쟁이 심화될수록 교육의 질이 높아지기보다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석·박사 학위에 대한 시장의 정확한 평가가 안 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해 기간을 줄여주거나 이수학점을 줄여 좀 더 쉽게 학위를 딸 수 있게 하는 대학이 나타나는 것도 시장 경쟁의 결과인 것이며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이 개탄한 하버드대의 학점 인플레 현상도 수강시장에서 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한 교수들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책임질 리더가 없는 조직▼
우리나라에서 특히 대학경영이 힘든 이유는 경영구조(governance)의 부재를 들 수 있다. 기업이 회장 이하 일사불란한 지휘체제를 갖고 있는 것과 달리 거의 모든 교수가 독자적인 권한을 갖는 대학은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경영을 책임질 총장 학장 학과장의 선출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권한체계가 명확하지 않다. 미국은 총장 임기가 평균 10년 이상이며 막강한 권한을 갖는 데 반해 우리나라 총장의 재임기간은 평균 3년여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권한이 없이 통과의례식의 임기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장기적인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질 리더가 없는 조직은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 명백한 리더가 없는 경영체제의 결과 우리 대학에서는 수요자보다 공급자인 교수 중심의 이해 집단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 대학에도 구조조정 태풍이 불고 있다. 핵심은 시장원리에 따라 대학을 통폐합하여 2009년까지 전체의 4분의 1인 87개 내외의 대학을 없애고 입학정원도 9만5000명 정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대학이 난립하여 4년제 대학만 190개가 넘었으나 인구는 줄고 국제 경쟁력이 없어 입학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부실 대학이 급증하고 있는 공급과잉의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든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의 통폐합이 기업의 인수합병(M&A)보다 훨씬 힘들고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기업 M&A도 장치산업이나 금융산업보다 지식기반 정보기술(IT)산업의 M&A가 성공확률이 낮은 것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지식 산업인 대학의 통폐합이 진짜 성공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기업도 M&A가 성공하려면 핵심역량의 상호 보완성이 확실해야 한다. 단순히 덩치만 키우거나 어려운 상태에 빠져있는 두개의 대등한 기업이 합쳐서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대학도 일반대학과 의과대학이 합치거나 서로 다른 분야의 두 대학이 합쳐 종합화하는 것과 같이 명백한 핵심역량의 보완이 없는 구색 갖추기식 통폐합은 실패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일시적인 정부의 당근에만 이끌려 통폐합한다면 실패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양적 통폐합만으론 한계▼
대학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 시장원리를 앞세운 반강제적 통폐합보다는 혁신과 상호 보완성에 기반한 자율적 통폐합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형적인 구조조정에 앞서 철저한 교수와 교육과정의 평가시스템,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강력한 책임경영체제, 대학 내 의사결정체제의 정비 등 대학 경영구조가 확립되고 내부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는 실질적인 경영혁신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대학만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