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천지가 한때 ‘세계 최고 부호’로 꼽았던 일본 세이부(西武) 그룹의 총수 쓰쓰미 요시아키(堤義明·71·사진) 전 세이부 철도 회장이 사법 처리될 위기에 놓였다. 임직원 명의로 대량의 주식을 위장 보유해 온 사건 때문이다.
19일에는 쓰쓰미 전 회장의 지시를 받아 비밀리에 위장 보유 주식을 매각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 온 세이부 철도 고야나기 데루마사(小柳皓正·64) 전 사장이 도쿄(東京)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야나기 전 사장은 쓰쓰미 전 회장이 사법 처리될 가능성이 커지자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세이부 철도 사장직을 사임한 그는 그동안 10여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20일 오후에도 검찰에 출두할 예정이었다.
세이부 그룹 해체 위기는 오너 일가가 장악한 비상장 지주회사인 ‘고쿠도’가 임직원 명의로 보유해 온 세이부 철도 주식 4000만 주를 지난해 8월 비밀 매각하면서 비롯됐다.
세이부 철도는 ‘상위 10대주주 보유 비율 80% 미만’이란 상장 조건을 채우지 못했는데도 이를 은폐한 채 주식시장에서 거래를 해 온 것이다. 이런 사실이 발각된 후 세이부 철도 주식은 상장 종목에서 폐지됐으며 쓰쓰미 회장은 세이부 그룹사의 모든 직책을 떠났다.
쓰쓰미 일가는 탈세를 목적으로 주식을 분산 보유해 왔으며 이 사실이 세이부 그룹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세이부 그룹은 세이부 백화점, 세이부 철도, 프린스 호텔 체인을 거느리고 있다. 그룹 창업자는 13선 의원으로 중의원 의장을 지냈던 쓰쓰미 야스지로(堤康次郞·1889∼1964).
쓰쓰미 요시아키 전 회장은 창업자의 차남으로 부친 사망 직후 그룹 총수직을 승계했다. 정치와 기업 활동을 동시에 했던 부친과 마찬가지로 정계 유력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대단위 레저시설과 택지 개발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