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강북에 산다. 그것도 성북동이나 한남동처럼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남들이 흔히 ‘후졌다’고 하는 동네에 산다.
요즘은 대학생들이 미팅을 나가도 강남에 살아야 다시 만나자고 한다는데 우리 동네 이름을 들으면 친구나 동료들은 나를 무척 딱하게 본다.
그런데 나는 강북에 살면서도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강남에 코엑스가 있다면 강북에는 경복궁이 있고, 강남에 로데오가 있다면 강북에는 대학로가 있다.
교육 환경이 좋다지만 강남에 산다고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 문화 등 주거환경만으로는 강북과 강남의 집값이 2∼3배 차이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몇 년을 열심히 일한 것보다 강남에 집 한 채를 사둔 것이 훨씬 큰돈이 됐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기대심리가 ‘강남 신드롬’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투기억제책을 내놨다가 다음번에는 주택 경기를 통해 전체 경기를 부양하는 등 오락가락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최근 경기 성남시 판교에 쏠리는 관심을 보자. 1980년대 말 집값 급등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을 때 정부는 분당 등 5대 신도시 건설계획을 내놓았고, 그 후 집값은 한동안 안정세를 보였다.
2001∼2003년 집값이 오르자 정부는 강남 수요를 대체할 신도시로 판교를 내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판교가 오히려 주변 집값을 올리는 진원지로 작용하고 있다. 판교에 당첨만 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가 너도나도 판교로 쏠리게 하는 것이다.
강남 재건축도 비슷하다. 자신들의 돈으로 자신들의 집을 새로 짓는다면 골프장을 만들건 호수를 파건 ‘사회적 위화감’ 운운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비용을 일반 분양분에 떠넘겨 손쉽게 재산을 불리고, 이것이 다시 주변 집값을 올리는 현재의 재건축 방식은 문제가 있다.
2002년 말로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재작년과 작년에 주택 공급이 늘면서 서울에도 미분양 아파트가 많다. 그럼에도 서울 가구들의 자기 집 보유율은 50%를 간신히 넘는다. 이제는 단순히 공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집값 상승을 막기 어렵고, 내 집 마련이 아니라 자칫 투기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최근 강북에도 청계천이 복원되고 뉴타운 건설 계획이 진행되는 등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주택에 대한 요구가 양에서 질로 바뀌고 있는 지금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집이 가족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재테크 수단이 되고, 그것이 맞아떨어지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백 가지 대책이 무효한 것은 아닐까.
강북은 강남과 달리 전통과 환경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개발되면 좋겠다. 그래서 서울이 단지 욕망의 도시가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문화적인 도시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