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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五.밀물과 썰물

입력 | 2005-02-21 18:12:00

그림 박순철


“나머지 장수들에게는 대군을 풀어 폐구성 앞의 위수를 끊고, 크고 넓은 도랑을 파서 그 물길을 성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하십시오. 또 모든 사졸들에게 큰 모래주머니 하나씩을 만들어 지니게 했다가, 이틀 뒤 날이 새거든 그것들을 폐구 성안으로 돌려진 위수의 물길 동편에 쌓아 많은 물이 일시에 성을 휩쓸도록 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 밖에 오월(吳越)에서 와 물질에 능숙한 장졸들은 배와 뗏목을 마련하고 기다리게 하다가 때가 오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적병을 건져 올릴 수 있도록 하셔야 합니다.”

장량은 그렇게 말하고 관영과 하후영, 주발에게는 따로 할일을 주었다. 새로 만든 기마대와 전거(戰車), 그리고 가려 뽑은 날랜 군사들을 이끌고 성안에 있는 옹군(雍軍)의 발악적인 반격에 대비하는 일이었다.

한왕은 곧 장수들을 군막으로 불러 모아 장량에게 들은 대로 나누어 시켰다.

장수들이 각기 한왕의 명을 받고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번쾌와 조참이 서쪽으로 위수(渭水)를 거슬러 올라간 뒤로 줄어들기 시작한 폐구 성밖의 물줄기는 그날 아침이 되자 원래의 절반도 안 되게 줄어들었다. 번쾌와 조참이 상류의 두 물줄기를 막아 많은 물을 가두어두었다는 뜻이었다.

폐구를 에워싸고 있으면서 위수의 물줄기를 끊어 폐구성의 해자(垓字)로 물길을 끌어대 놓고 있던 나머지 한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련해둔 수만 개의 모래주머니로 위수의 흐름을 끊고 있는 둑을 높이면서, 아울러 해자로 이어지는 물길 동쪽도 높였다.

한편 폐구 성안에 갇혀있던 옹왕(雍王) 장함은 한군이 갑자기 공성(攻城)을 멈추자 슬며시 의심이 났다. 하루를 기다렸다가 성루 높은 곳으로 올라가 세밀하게 한군의 진채 쪽을 살폈다.

놀랍게도 한군이 위수를 끊어 성쪽으로 물길을 돌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다음날부터 위수 물이 차츰 줄어들자 장함도 한군의 계책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장함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성을 나가서 싸워봤자 곱절이 넘는 한나라 대군이 쳐둔 그물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요, 그렇다고 에움을 헤치고 달아날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멀리 패왕 항우에게 올 것 같지도 않은 원병을 다시 재촉하는 한편 나름대로 수공에 대비했다. 성벽이 허술한 곳을 두텁게 쌓아 올리고, 군량을 성안 높은 곳으로 옮겨 놓아 물에 잠기는 것이나 면하게 하는 정도였다.

(강물을 끊어 성을 잠기게 하겠다는 한군의 계책이 무리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늦여름 6월이라 수공(水攻)을 펼치기에는 마땅하지 않은 때다. 늦장마라도 들면 둑을 쌓은 것도, 물길을 끊은 것도 모두 헛일이 된다.)

한군의 공격이 멈춘 지 사흘 째 되는 날도 장함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성벽에 올라 바깥의 변화만 살폈다. 그런데 그날은 모든 게 심상치 않았다. 기다리는 늦장마는 없고 위수 물이 절반으로 줄어있을 뿐만 아니라, 성벽 밖 해자로 이어지는 물길 동쪽으로는 모래주머니가 거의 성벽높이로 쌓아올려지고 있었다.

(아무리 위수를 끊어 막았다 하나 설마 폐구성 같이 큰 성을 물에 잠기게 할 수야 있겠는가. 물이 들더라도 성안 낮은 곳이나 잠시 잠기게 할 정도일 것이다.)

장함은 그렇게 애써 자신을 달래며 성안 군민들을 다독여 싸움채비를 하게 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