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오페라 연출가 볼프람 메링 씨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1969년 처음 한국을 찾은 뒤 1970년대에 세 차례나 국립오페라단 작품을 연출했던 그는 3월 22일부터 공연하는 국립오페라단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연출하기 위해 최근 내한했다.
21일 만난 그는 1974년의 ‘문세광 저격사건’ 얘기를 대뜸 꺼냈다. “사건 전날까지 국립극장 무대에서 베르디의 ‘오텔로’를 연습하고 있었죠. 우연의 일치였을까, 대통령 부인이 쓰러진 장소는 여주인공 데스데모나가 목 졸려 죽는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현장검증이 끝난 뒤 연습은 계속됐죠.”
그는 최근 두드러지는 한국인 성악가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기뻐하고 있었다. “음악의 본고장인 독일, 이탈리아의 크고 작은 오페라극장을 한국인 주역가수들이 장악해 가고 있습니다.” 이어 그는 다소 색다르다고 할 수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1970년대 내가 한국에서 연출했던 오페라는 모두 한국어로 공연됐죠. 연습을 하면서, 한국어는 모음이 매우 풍부하고 노래하기에 적합한 언어임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이 ‘성악의 강자’가 된 것은 아닐까요.”
과연 그럴까. 기자가 지금까지 만난 외국인들은 한국어가 ‘음절마다 끊어지는 듯이’ 들린다고 말했다. 그다지 ‘노래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대신 한국인들이 노래에 강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 다른 분석들이 있다. ‘교회의 성가대 활동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기질이 개방적이고 자기표현에 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사서에서 보듯 한국인은 예부터 가무음곡(歌舞音曲)에 능했다’….
오페라 애호가이자 ‘성대(聲帶) 전문가’인 이비인후과 전문의 장근호 씨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우리말은 자음이 연속해 나오지 않는 모음 위주의 언어라 노래하기 적당한 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성적으로 노래하기를 즐기는 사회심리적 특징이 더 크게 작용하는 건 아닐까요.”
역시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인 듯하다. 중요한 것은, 명가수가 많은 한국은 점점 더 좋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적합한 환경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주역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카르멘’을 지휘한 정명훈 씨는 연습 중간에 탄성을 질렀다. “아, 이렇게 좋은 합창단은 다른 나라에 없어요. 프랑스에도 없어….”
바로 그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이 이번 ‘마탄의 사수’ 공연에서 유명한 ‘사냥꾼의 합창’을 노래한다. 가슴이 설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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