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감으면 미인으로 변하는 샴푸를 등장시켜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었던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2004년·사진 오른쪽)의 MBC 노도철 PD(35).
그가 이번에는 흡혈귀 가족들을 통해 가족 해체 현상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안녕, 프란체스카’(월 밤 11:05·사진 아래)를 선보이고 있다.
루마니아의 뱀파이어 프란체스카(심혜진) 소피아(박슬기) 엘리자베스(정려원) 켠(이켠)이 멸족 위기를 맞아 서울의 안전 가옥으로 피신, 인간인 두일(이두일)을 끌어 들여 가족 아닌 가족 행세를 하며 산다는 판타지 시트콤이다.
“가족 시트콤들은 모든 갈등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하는 모습을 그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점차 해체돼가는 현실 속의 가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안녕, 프란체스카’는 섬뜩함과 인간애가 충돌하면서 독특한 웃음을 끌어낸다.
21일 4회 방송에서는 프란체스카가 집 앞에 버려진 아기를 데려와 ‘뼈다귀 모빌’을 걸어두고 다정하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마법사가 휘두르는 칼에 제국 병사들의 목은 붉은 피를 내뿜으며 나가떨어졌습니다….”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가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며 방글거리는 장면에서는 폭소를 참기 어렵다. 시청률도 방송 4회 만에 10.9%로 상승해 경쟁 프로그램인 KBS2 ‘폭소클럽’을 앞지르기 시작했다(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
“생활고에 못 이겨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고, 집세와 교육 문제 때문에 서로 싸우는 흡혈귀 가족의 고민은 2005년 서울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죠.”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왜 하필 흡혈귀들을 등장시켰을까.
“‘쾌걸 춘향’처럼 드라마가 코믹 장르를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시트콤들은 설자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판타지를 시도하는 거죠.”
시트콤 PD들의 또 다른 고민은 캐스팅.
“신인 연기자들은 시트콤 출신이라는 경력을 부끄러워하고, 중년 연기자들은 ‘내가 조금만 오버하면 웃어주겠지’ 하고 자만합니다.”
서울대 불문과 재학시절 프랑스문화원의 프랑스어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던 노 PD는 드라마 연출의 꿈을 안고 1996년 MBC에 입사했으나 당시 선배이던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의 권유로 예능 PD로 나섰다.
“처음 보자마자 ‘물건’ 하나 들어왔다고 생각했다”는 주 교수의 말대로 노 PD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 ‘느낌표’의 ‘하자하자’ 코너 등 맡은 프로그램마다 높은 시청률을 뽑아냈다.
노 PD는 ‘영웅시대’의 최불암 연기를 보며 울고, 출장길에는 20가지의 화장품을 꾸리며, 10평짜리 원룸에서 100인치 크기의 TV 모니터를 즐기는 독신남이다. 그는 “호흡이 길고, 낄낄거리다가도 여운이 남는 시트콤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