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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터뷰]김지수 “세월은 가는데… 안주하기 싫었다”

입력 | 2005-02-23 18:30:00


지수(32·사진)가 데뷔 13년 만에 영화에 처음 출연한다. 다음 달 10일 개봉되는 ‘여자, 정혜’(감독 이윤기). 이 영화에서 김지수는 어릴 때의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우체국 여직원 정혜다. 정혜는 그녀만큼 평범한 남자(황정민)를 만나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 연다.

23일 오전에 만난 김지수는 수척했다. 우울해 보였다. 전날 ‘여자, 정혜’ 기자시사회 도중 같은 소속사 배우 이은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전해들은 그녀는 질겁한 표정으로 바로 자리를 떴다. 김지수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자, 정혜’는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김지수에게도 낯설고 두려웠다.

“카메라가 날 감시하는 기분이었어요. 늘 날 따라다녔죠. 드라마 촬영 땐 경험할 수 없었던 구속받는 느낌…. 외로운 순간이었어요. 내가 이겨내야 할 순간이기도 했고.”

안철민 기자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 헬드’ 기법으로 100% 촬영된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김지수에 찰싹 달라붙는다. 카메라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감시하고, 혹은 내버려둔다. 김지수의 얼굴, 손, 발은 스크린에 가득 클로즈업된다. 여배우로선 부담스러운 일이다.

“난 손이 안 예쁜데…. 여배우로서 자신 없는 장면이 많죠. 너무 싫은 장면도 있고. 어떤 여자가 카메라 앞에서 안 예뻐 보이고 싶겠어요. 김지수는 예쁘게 보이고 싶어도 ‘정혜’는 예쁘게 보여선 안 되니깐….”

그녀는 정말 ‘지독한’ 영화를 골랐다. 정혜는 표정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가 하는 ‘의미심장’한 행동이란 화초 잎을 닦아내고, 설거지하다 쓱 등 뒤로 TV를 보고, 칫솔질하다 빨아 놓은 발목 스타킹이 다 말랐는지 만져 보며, 고양이에게 밥 주고, 컵라면 뚜껑을 원뿔 모양으로 말아 라면을 담아 먹으며, 아주 잠깐 과거의 기억을 스치듯 떠올리는 게 전부다. 시나리오에 쓰인 가장 구체적 연기지시(지문)가 ‘흔들리는 정혜의 표정’이었을 만큼 시나리오는 김지수에게 많은 여백을 줬다.

“TV 카메라 앞에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정혜’가 돼요. 하지만 영화 카메라 앞에선 ‘아무것도 안 하는 정혜’가 되기 위해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연기해야 하죠.”

‘그냥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장면이나 ‘잠자면서 손을 까딱거리는’ 장면은 5, 6번씩 다시 찍어야 했다.

“촬영 중에도 하루는 정혜가 좋았고 다음날은 정혜가 싫어졌어요. 정혜가 너무 답답해 연기하기 싫을 때도 있었죠. 난 슬프면 울어요. 하지만 정혜는 너무 슬프면 안 울어요.”

“왜 연기 14년째에야 영화에 발을 들여놨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나이는 먹어 가는데 이대로 안주하는 게 너무 싫었다”고 했다. 단도직입적이었다. 이런 직설적인 그녀의 성격은 자신을 확실히 관리할 것 같고 절대 실수도 안 할 것만 같은 그녀의 차가운 이미지와 묘한 충돌 혹은 동거를 이루는 것 같았다.

김지수는 “이 영화가 우리 관객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지루하고 심심할 수도 있죠” “해외 언론이 칭찬했다는 이유로 국내 언론이 이 영화를 칭찬해 주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비즈니스예요. 영화도 안 한 저에게 흥행을 담보하는 시나리오가 제 발로 오진 않아요”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고민이 뭐냐는 질문에 김지수는 “연기하면서 아주 잘 늙어가는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에서처럼 속눈썹이 참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