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급에서 4급으로 승진해 올해 처음 공직자 재산 등록을 하게 된 청와대 행정관 A 씨(38)는 이달 초 중앙인사위원회로부터 누락 재산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중앙인사위 측이 금융감독원 전산망으로 확인한 결과 딸 명의로 된 은행 예금 1200만 원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 깜짝 놀라 부인에게 확인한 결과 10여 년 전부터 틈틈이 모은 돈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부랴부랴 은행에서 예금잔고증명서를 떼 추가 제출한 A 행정관은 부인에게 “나 몰래 돈을 모아놓다니 참 기특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A 행정관의 사례는 미담(美談)에 속한다. 매년 1월 말까지 4급 이상 공무원 전원이 의무적으로 재산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부부간, 부모 자식 간에도 모르게 숨겨둔 재산이 드러나 말썽을 빚는 일이 허다하다. 심지어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인 B 씨(34)는 올해 초 재산 등록을 위해 어머니에게 은행 예금이 있는지 물었으나 “내가 무슨 돈이 있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에서 어머니 명의로 수천만 원의 예금이 있다는 누락 통보를 받고 뒤늦게 보완신고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나중에 은행 측으로부터 예금계좌 확인 통보를 받은 어머니로부터 ‘재산이 탐이 나 몰래 뒷조사를 했다’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B 씨는 “그 일 때문에 어머니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아직도 오해가 풀리지 않아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여성 국회의원인 C 씨도 최근 재산 등록 과정에서 남편이 용돈으로 쓰려고 틈틈이 모아둔 예금통장을 ‘적발’했다. C 의원의 남편은 ‘비자금 조성’을 사죄하는 뜻에서 매달 부인에게 일정액의 후원금을 내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지었다는 것.
이처럼 재산 등록 과정에서 직계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재산이 종종 들통나면서 일부 공무원들의 입에서 “재산등록은 일종의 사생활 침해”라는 불평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의 모 서기관은 “어차피 뇌물로 받은 돈이 있더라도 재산으로 등록하지 않을 텐데 과연 비리예방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도 “몇만 원 정도 남아있는 휴면계좌까지 신고에서 빠뜨리면 누락 통보를 받기 때문에 일일이 은행을 찾아다니며 서류를 떼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며 “먼저 정부에서 금감원과 국세청 전산망으로 재산을 확인해 통보해준 뒤 빠진 것을 신고하라는 게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연말에 집중적으로 들어오는 후원금 때문에 재산등록 때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산등록이 12월 31일 기준이어서 후원금이 들어오는 대로 본인 명의의 정치자금 통장에 입금 처리하면 현금 재산이 크게 늘어난 것처럼 비치기 때문. 이 때문에 다음해로 넘겨 후원금을 입금 처리하는 것이 국회 안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돼 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