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연의 모습은 어떤가?
‘한낮에는 바깥 수도가 녹고, 밭에는 냉이가 한창이다. 광대나물꽃이 망울졌고 청딱따구리 소리를 들었다. 딱새가 아침에 마당에서 날아다닌다. 우리는 비닐집 속에 고추씨를 넣었다.’
이렇게 그날그날 자연의 모습을 달력에 적고 있다. 농사지으면서 공부 삼아 달력에 메모를 하며 시작한 일이다. 한 해 두 해 지나며 지난해 이맘때 적은 걸 참고하며 새로운 내용을 보태니, 농사와 살림살이에 일머리가 생긴다. 우리 농사 방식에는 진달래꽃 필 때 볍씨를 물에 담그고, 찔레꽃 피고 뻐꾸기 울기 시작하면 모내기하기 좋다. 그렇게 만든 달력에 ‘자연달력’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방안에 앉아 생각하면 자연의 흐름은 해마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다. 조금 있으면 개구리 울고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겠나. 하지만 문밖으로 나가 오감을 열고 자연의 흐름에 집중하면 자연은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며칠 전 바람이 세게 불어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겨울이 다시 오나’ 했다. 그런데 밤에 나가 보니 비가 촉촉이 오신다. 눈이 아닌 비가 말이다. 사람에겐 차갑게 느껴졌지만 봄을 몰고 오는 바람이었나 보다. 마당에 매화나무 꽃망울은 그 바람과 비를 한점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맞으며 언제 꽃봉오리를 터뜨려야 할지 알아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고 한다. 새로운 법이 생겼는지, 어떤 신상품이 나왔는지, 내 관심 분야의 요즘 흐름은 어떤지…. 깨어 있어야 이 사회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뿐 아니라, 이 지구에서 한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현대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자연에 눈뜨는 게 아니라 자연에 무감하기 쉽다.
그런 나를 일깨우고 싶어 오늘도 자연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인다. 자연에 한발 한발 다가갈수록 내가 새롭게 깨어나는 기분이다. 내게 가장 가까운 자연은 내 몸이 아닌가. 언젠가부터 내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눈 아프게 보았으니 이제 그만 보아라’, ‘춥다고 웅크리지만 말고 활기차게 움직여라!’ 봄바람 분다고 방안에 앉아 있을라치면 ‘냉이가 먹고 싶다’고 몸이 말해 준다.
남들이 다 떠나는 농촌에 자리 잡으며 솔직히 어찌 살아갈지 두려웠다. 그러나 농사하고 거두면서 곡식만이 아니라 자연에 대해 깨어나는 정신적인 양식도 얻고 있다. 봄이 되어 농사를 시작하며 ‘올해는 가물지 않을까’, ‘어떤 기상이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그 물음에 해답을 찾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천지운행의 원리를 찾아나갔다. 옛 농사 책인 ‘산림경제’에는 천지의 운행을 헤아려 모내기하는 날, 장 담그는 날을 잡았다. 그때에 견주어 과학이 무척 발달했다는 이 시대의 농부인 나는 언제가 볍씨 담그기 좋은 날인지 아직도 잘 헤아리지 못한다.
오늘 자연의 모습을 적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천지의 움직임을 헤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는 한자리에 피어 있는 들꽃도 서로 다른 행성의 기운을 받기에 뿌리 모양도, 꽃 색도 다르다고 했다. 그의 제자들이 천지의 운행을 헤아려 만든 ‘생명역동농사력’이란 달력이 우리나라에까지 왔다. 우리도 우리의 자연력(自然曆)을 만들 날을 기다린다.
장영란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