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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징용 피해 접수 한달… 애달픈 사연들

입력 | 2005-02-28 18:01:00


지난달 1일부터 시작한 일제의 강제동원피해 신고서 접수가 28일로 한 달을 맞았다.

지난 한 달간 하루 평균 접수 건수는 2000건 안팎. 신고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안타까운 사연도 속속 알려지고 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전기호·全基浩)는 신고 내용을 토대로 지난달 21일 현장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이달부터는 희생자 및 유족 결정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신고 접수 현황=28일까지 본 위원회와 전국 16개 실무위원회에 접수된 피해 신고건수는 4만2458건. 이는 300만 명(연인원 8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체 피해자의 1%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애달픈 사연들=일제의 강제징병으로 두 오빠를 잃은 김영옥(金榮玉·73·경기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씨는 지금도 오빠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당시 20세 안팎이던 두 오빠는 광복을 한 달 앞둔 1945년 7월 중순경 만주의 일본군 부대로 떠났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안돼 큰오빠 덕균(德均) 씨가 사망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고, 둘째 오빠 주식(周植) 씨는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다.

입대 직전 두 오빠에게 “어차피 갈 수밖에 없다면 지금 갔다 오라”고 말했던 김 씨의 부친은 두 아들을 잃은 뒤 자책감에 7년 동안 시름시름 앓다 1952년 결국 세상을 떴다.

박화숙(朴和淑·66·여·전북 군산시 금광동) 씨는 평생 징용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92년 86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일제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박 씨의 아버지 영철(永喆) 씨는 1945년 초 일본 탄광으로 끌려가 일하던 중 작업장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온몸에 부상을 입었다. 불편한 몸으로 막장일을 계속했던 박 씨의 아버지는 광복이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사지가 떨리는 등 갈수록 심해지는 후유증 때문에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았다.

박 씨는 “아버지가 50대 후반부터는 아예 몸을 가누지도 못해 돌아가실 때까지 30여 년간 나와 동생이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돌봤다”며 “도대체 이 피해를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한단 말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