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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五.밀물과 썰물

입력 | 2005-02-28 18:07:00

그림 박순철


“조참은 임시로 좌승상을 삼아[가좌승상] 군사를 이끌고 관중을 지키게 하였소. 1000리가 훨씬 넘는 곳에 있는 사람이라 임박한 위나라 정벌에 쓸 수 있을지 모르겠소.”

한왕 유방이 그렇게 말하며 걱정했다. 대장군 한신이 별일 아니란 듯 말했다.

“날랜 말을 탄 사자를 조참에게 보내 자신이 부릴 정병 3000만 이끌고 이리로 달려오라 이르십시오. 길이 멀다 해도 보름이면 넉넉히 이곳에 이를 것입니다. 잔뜩 겁을 먹고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긁어모아 임진(臨晉)나루를 막고 있는 위표를 속이고 몰래 하수(河水)를 건너려면 신에게도 보름은 필요합니다.”

“관영이 이끄는 기마대는 따로 꾸민 지 얼마 되지 않소. 저 홀로 떨어져 돌아다니며 전투를 벌일 만한 능력이 되는지 모르겠소.”

한왕은 다시 그렇게 걱정했다. 그러나 한신은 이번에도 별로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관영의 불같은 기마전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그에게 다시 수천의 기마대를 붙였으니, 관영은 반드시 그들을 자신에 못지않은 기사(騎士)로 길러낼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날로 위나라를 정벌할 채비에 들어갔다. 한왕은 그런 한신을 좌승상(左丞相)으로 올리고 조참과 관영을 대장으로 딸려주었다.

그때 위왕 표는 한신의 말대로 포판(蒲坂)에 대군을 끌어 모아 임진나루를 막고 있었다. 지난번에 한왕이 그곳에서 하수를 건넜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여긴 까닭이었다. 한신은 그런 위표의 근거 없는 헤아림을 거꾸로 이용했다.

한신은 포판 맞은편 하수가에 거짓으로 한군(漢軍) 진채를 벌려 세우고 수많은 깃발을 꽂아 대군이 이른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 임진나루 맞은편에는 수많은 배들을 끌어 모아 당장이라도 대군이 하수를 건널 것처럼 수선을 떨었다. 이에 위표는 더 많은 군사를 포판으로 끌어 모으고 대장군 백직(柏直)과 기장(騎將) 풍경(馮敬), 보졸장(步卒將) 항타(項타)를 다잡아 한군을 맞을 채비를 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한군의 움직임이었다. 대군이 하수 저편에서 먼지만 일으키고 깃발만 휘날릴 뿐, 열흘이 넘도록 배를 띄우지 않았다. 잔뜩 모아 놓은 배만 임진나루 저편에 줄지어 묶여 있을 뿐이었다.

“알 수 없구나. 저것들이 왜 저렇게 머뭇거리고만 있는 것이냐?”

가까이서 몇 달 한신을 겪어보아 그의 지모를 잘 아는 위왕 표가 장수들을 불러 모아 놓고 물었다. 백직을 비롯한 위나라 장수들도 모두 의논만 분분할 뿐 왜 한군이 하수를 건너지 않는지 알지 못했다. 아래위가 은근히 불안해하며 강 건너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한신이 이끈 3만 한군은 하수를 건너 위나라의 심장부를 깊숙이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먼저 기장 관영이 이끈 5000 기마대가 하수를 건너지 않고 동쪽으로 달려가 있을지 모르는 초나라 원병(援兵)에 대비했다. 남다른 기동력으로 초군(楚軍) 후방을 누비며 보급로를 끊고 기습을 감행해 서쪽으로 밀고 드는 대군의 발목을 잡았다.

그 사이 한신은 관중에서 돌아온 조참과 3만 군사를 좌우로 갈라 이끌고 하수를 따라 가만히 하양(夏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군사들을 풀어 나무로 만든 앵(앵)과 부(부)를 수없이 거둬들이게 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