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박순철
한왕이 일찍이 헤아린 대로 위군(魏軍)은 장수부터 한군(漢軍)보다 자질이 많이 뒤졌다. 백직(柏直)이 대장군이 되어 우쭐거렸으나 한신에게 크게 미치지 못했고, 보졸(步卒)을 이끄는 항타(項타)도 조참을 당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장 관영이 한신의 본대와 따로 떨어져 있어 풍경(馮敬)의 기마대가 덤으로 위군에 붙어 있는 셈이었으나 이미 안읍을 차지한 한군은 성을 끼고 있어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장수들 못지않게 위나라 군사들도 도무지 한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위나라 군사들은 대개 위표가 그 한두 달 사이에 마구잡이로 끌어내 머릿수만 늘렸을 뿐 전혀 조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연 이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와 몹시 지쳐있었을 뿐만 아니라 적의 대군이 등 뒤에 나타나 도읍까지 빼앗겼다는 소문으로 겁먹고 기죽어 있었다.
“장군은 곧바로 위표의 중군을 향해 치고 드시오. 나는 남은 군사를 학의 날개처럼 펼쳐 저들을 정면에서 몰아붙일 것이오.”
처음 성을 나서면서 한신이 그렇게 군령을 내릴 때만 해도 조참은 그 뜻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듣기로 학의 날개처럼 군사를 펼쳐 적을 덮치는 것은 큰 군사로 작은 군사를 몰 때나 펼치는 진세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적은 머릿수가 많고 우리 군사는 적은데 어찌 그런 진세를 펼치려 하십니까?”
조참이 그렇게 한신에게 물었다. 한신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군사의 크고 작음이 반드시 머릿수에만 달려있지는 않소. 기세를 타면 정병(精兵) 하나가 100명의 난군(亂軍)을 물리칠 수도 있소. 기죽고 겁먹은 군사에게는 우리 중군 2만이 100만 대군보다 더 크게 보일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오. 장군이 위표의 중군만 흩어버리면 오늘 싸움은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소.”
그리고 조참에게 어서 성을 나가기를 재촉했다. 이에 가려 뽑은 1만 군사를 이끌고 무서운 기세로 성을 나간 조참은 곧장 위왕 표의 중군기(中軍旗)를 향해 치고 들었다.
평소 병법이라면 혼자 아는 체 떠들어 대던 백직이었으나 조참이 그처럼 앞뒤 없이 돌진해 오자 낯빛부터 허옇게 변했다. 입으로는 장수들을 불러 조참을 사로잡으라고 소리치면서도 두 눈은 벌써 뒤돌아서 달아날 길부터 찾고 있었다. 혼란되기는 항타와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소리쳐 부장(副將)들을 재촉할 뿐 정작 자신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오락가락했다.
오히려 가장 장수다운 것은 왕인 위표였다. 여러 해 싸움터를 누비고 다니며 키운 것일까, 일이 다급해진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스스로 병기를 잡고 앞장을 섰다.
“두려워하지 마라.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저들을 쫓고 안읍만 되찾으면 곧 서초패왕의 대군이 이르러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그렇게 외치면서 말 배를 박차 조참에게로 마주쳐 나가려는데, 다시 동문 쪽에서 한신의 중군이 뒤따라 나왔다. 군사를 학의 날개처럼 펼쳐 들판을 덮고 밀려오는 한군의 기세가 어지간한 위표의 눈에도 엄청난 대군으로 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이 떨리고 손발이 굳어오는 듯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