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상 촬영상 등 올해 아카데미 5개 부문을 수상한 ‘에비에이터’는 재밌는지 지루한지 헷갈리는 영화다. 아카데미 최다 수상에도 불구하고 작품상 감독상 등 핵심 부문 오스카를 손에 쥐지 못한 이 영화는 화려한 이미지와 거대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마음을 확 잡아당기는 ‘소금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시간 49분의 상영시간을 가진 이 영화는 보는 태도에 따라 흥미진진할 수도, 잠이 쏟아질 수도 있다.》
① 재미있게 보는 법
극중 인물인 괴짜 사업가 ‘하워드 휴즈’를 ‘휴즈’가 아닌,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31)로 본다. 그의 ‘남자 되기’에 점수를 줘 보는 것.
출세작 ‘타이타닉’(1997년)의 디카프리오와 이 영화 속 디카프리오를 비교한다. 그는 ‘소년’에서 ‘남자’로 변신하기 위해 ‘에비에이터’에서 강력한 표정을 보여준다. ‘에비에이터’에서 그가 짓는 표정은 딱 세 가지다.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대해 짓는 신경증적인 표정(사진1) △일에 미쳐 폭발 직전의 표정(사진2) △생각에 빠져 집중하는 표정(사진3). 이들 표정은 해맑았던 ‘타이타닉’의 그것과 달리 굵은 주름이 팬 인상적 미간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미간을 찌푸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표정을 변주해내지 못하는 디카프리오의 연기력 부족을 드러내기도 한다. ‘소년’을 벗어나겠다는 그의 강박이 이런 강렬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표정들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타이타닉’의 유명한 포옹신을 ‘에비에이터’와 비교해 보는 방법도 있다. ‘타이타닉’의 포옹은 사랑과 꿈과 낭만을 동시에 머금었다(사진4). 하지만 ‘에비에이터’에서 케이트 베킨세일(여배우 에바 가드너 역)을 비슷한 포즈로 껴안는 디카프리오의 모습(사진5)에선 집착과 욕정만 꿈틀거린다. 적어도 이 장면에서 디카프리오는 진짜 ‘남자’가 됐다.
② 재미없게 보는 법
사진6
‘디카프리오’엔 관심을 끊고 오직 ‘휴즈’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휴즈가 보이는 행동들이 논리적으로 어떤 연결고리를 갖는지 생각해 본다.
휴즈는 가장 큰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에 사로잡힌 ‘빅 콤플렉스’ 환자인 동시에 문고리도 못 잡는 결벽증 환자다.
하지만 남의 손도 못 잡는 결벽증 환자가 캐서린 헵번, 가드너 등 수많은 여자들과 살을 섞으며 염문을 뿌린다? 이 인과관계를 영화가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지 못하면서 휴즈의 캐릭터는 일관성을 잃는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헵번과 가드너의 실물을 떠올리는 방법도 있다. 헵번 역의 케이트 블란쳇(사진6)은 갑부인 휴즈가 사족을 못 썼다고 믿기엔 어려운 외모. 이는 풍만한 섹시스타 가드너를 연기한 베킨세일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외모보다는 연기라고 하지만(실제 케이트 블란쳇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탔다), 20세기 초 할리우드의 영화(榮華)를 다시 불러낸다는 ‘에비에이터’의 거대한 포부를 감안할 때 초라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