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대학 선배 집에 들른 적이 있다. 선배는 남편 없이 아들 둘을 키웠는데, 이번에 둘째가 의대를 갔다기에 대견한 마음에 찾아간 것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에 들어서니 양 벽면이 마치 서점같이 책으로 가득했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읽었던 동화책들이 낡은 채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제야 난 선배의 두 아들이 ‘번듯한 과외 한번 안 하고도’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갈 수 있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기 위한 환경은 우선 가정에서 시작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집안 어딘가에 ‘가정 도서관’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베란다나 작은 방, 아니면 거실의 어떤 공간에 책꽂이를 놓고, 가족이 각자 몇 권의 책을 정돈해 놓으면 훌륭한 가정 도서관이 된다. 독서는 가능하면 그 공간에 모여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도서관 개관 시간에는 가족 모두가 책을 보고, 매일 하는 것이 힘들면,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정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는다.
가정 도서관을 만들고 난 뒤에는 회의를 통해 가족의 특성과 가훈을 생각해서 예쁜 이름을 붙이면 더욱 친밀감을 갖게 된다.
‘느티나무 집 도서관’ ‘책벌레 모이는 곳’ ‘파란 집’ ‘꿈터’….
가정도서관에는 신문과 월간지가 비치되어 있으면 활용하기 쉽다. 신문은 아이들이 쉽게 시사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해주고 매일 실용적인 글에 익숙하게 해준다. 또 좋은 월간지는 종류에 따라 정보도 주고, 다양한 형태의 글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도서관처럼 가족끼리라도 대출기록부를 적는 게 좋고, 서로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나 자신이 읽은 책의 감상을 적는 게시판 같은 것을 두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면 가정 도서관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가정 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이 책을 소유하는 것의 소중함도 알았으면 좋겠다. 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체험을 준다는 것을 아이들이 깨닫게 하면 독서의 의미가 배가된다. 읽고 난 책을 간직하면서 책을 가지는 행복을 체험하는 것은 어떨까? 읽은 책을 버리지 말고 커 가면서 가끔씩 꺼내 읽게 해주면 추억의 맛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가정도서관’들이 형편에 따라 동네 아이들에게도 책을 보여 줄 수 있는 장소로 발전했으면 한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 도서관은 퇴직한 노부부가 좁은 거실이나 지하 방 같은데 도서관을 만들고 아이들을 모아서 옛이야기도 들려주고, 그림동화도 보여주면서 시작되었다. 함께 읽는 독서 문화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토론 문화를 가까이 하고, 공공 도서관 예절도 배우게 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오길주 문예원 원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