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의 연애 후 결혼키로 한 이모(29·여·서울 양천구 신정동) 씨는 최근 파혼을 선언했다.
예비신랑과 결혼 준비를 간소하게 하기로 했지만 시어머니가 “남들 보기 부끄러우니 내 밍크코트와 시아버지 한복 한 벌은 좋은 것으로 마련하라”고 요구한 것이 갈등의 계기가 됐다. 예비신랑이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이 씨 측의 사정을 고려해 2000만 원을 건네줬는데 이 사실이 양가에 알려지면서 급기야 집안싸움으로 번진 것.
김모(56·여·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씨는 올가을 결혼을 앞둔 아들과 요즘 매일 싸우다시피 한다. 결혼식을 검소하게 치르자는 김 씨와 달리 아들이 특급호텔을 예식장소로 고집하는 까닭이다.
거품 많은 예단과 예물, 무분별한 하객 초청, ‘공과금’ 같은 축의금….
우리 사회의 결혼식에는 과시, 체면을 중시하는 세태가 집약돼 있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명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조사 결과 예단비용의 경우 2000년에는 평균 572만 원을 썼는데 2003년에는 1231만 원으로 증가했다. 예물비용도 2000년 평균 500만 원에서 2003년엔 922만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회사원 이모(32) 씨는 “이른바 ‘길일’에는 하루에 4건의 결혼식이 겹치기도 한다”면서 “얼굴도 모르는 거래처 사장 자녀의 결혼식에 가 축의금만 내고 오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특히 하객 수와 집안의 사회적 지위를 동일시하는 분위기 탓에 돈을 주고 하객을 사는 일도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서울에만 30개 이상의 하객대행업체가 성업 중이며 ‘대리 친구’는 5만 원이 정가”라고 귀띔했다. 그는 “상대측에 비해 하객 수가 적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박사후과정을 밟고 있는 한모(31·여) 씨는 “일본은 가까운 지인 50명 정도에게만 초청장을 보낸다”며 “또 미리 결혼식 참석 의사를 확인해 올 수 있는 사람의 자리만 예약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최근 2년 내 결혼한 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한국의 결혼문화가 호화·사치스럽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실천하지 못할 뿐, 우리의 결혼문화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혼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동안 뿌린 돈이 얼만데’라는 보상심리에서 닥치는 대로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건전혼례사업부 이광열(李光烈) 사무국장은 “결혼 날짜를 잡고 신혼여행을 마칠 때까지 한국의 결혼은 평균 13개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는 “불필요한 절차는 생략하고 합리적으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