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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五.밀물과 썰물

입력 | 2005-03-04 18:06:00

그림 박순철


그날 위왕(魏王) 표(豹)는 북쪽으로 50리를 달아나서야 겨우 내닫기를 멈추고 그리고 쫓겨 오는 군사들을 거두었다. 7만을 헤아리던 군사들이 그새 3만도 안되게 줄어있었다. 그들을 수습해 다시 대오를 갖추게 한 위표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하는 수 없다. 평양(平陽)으로 돌아가자. 그곳은 패왕께서 과인을 서위왕(西魏王)으로 봉할 때 도읍으로 삼게 한 곳이었다. 이번에 안읍으로 도읍을 옮겼으나, 과인의 부모와 처자는 아직 평양에 있고, 그곳 백성들도 아직은 과인을 따르고 있다. 그리로 물러나 다시 한번 힘을 모은 뒤 한신과 싸워보자!”

한번 된통 혼이 난 뒤라 위나라 장수들도 달리 내놓을 만한 계책이 없었다. 말없이 위표를 따라 평양으로 향했다.

하지만 위표의 뜻대로 되도록 한신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같은 날 안읍에서 30리나 위군을 쫓다가 갑자기 징을 쳐 군사를 거둔 한신이 조참을 불러 말했다.

“듣기로 평양은 위표의 원래 도성인데, 아직도 위표의 부모처자가 모두 그 성안에 있고, 적잖은 재물과 왕부(王府)의 관속(官屬)도 또한 모두 거기 있다고 하오. 이제 위표는 반드시 그리로 갈 것이니, 거기에 맞춰 그물을 치고 기다리면 위표를 산 채로 잡을 수 있을 것이오. 장군은 이 길로 1만 군사를 이끌고 곧장 평양으로 달려가시오. 가서 지체 없이 그 성을 우려 빼고 위표의 부모처자를 사로잡은 뒤 위표가 그리로 쫓겨 오기를 기다리시오. 나는 지름길로 뒤쫓아 곡양(曲陽) 쯤에서 한 번 더 위표의 얼을 뺀 뒤 그리로 몰아가겠소.”

이에 조참은 날랜 군사 1만으로 평양을 향해 달려갔다.

한때 서위의 도읍이었던 만큼 평양의 성벽은 높고 두터웠다. 그러나 위표가 군사들을 모두 빼가는 바람에 지키는 병력은 많지 않았다. 조참이 불시에 들이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성이 떨어졌다.

평양성 안으로 들어간 조참은 먼저 위표의 부모와 처자부터 찾았다. 그때 위표의 아비는 이미 죽고 늙은 어미만 남아 있었다. 먼저 그 어미가 영문도 모르고 허옇게 질린 얼굴로 군사들에게 끌려왔다. 조참은 위표의 어미를 수레에 가둔 뒤 다시 성안을 뒤져 위표의 처자를 찾아보게 했다.

오래잖아 위표의 아내와 자식들이 한 두름에 엮이듯 묶여왔다. 조참은 다시 그들마저 죄수 싣는 수레에 가둔 뒤 곡양 쪽으로 나가며 위표가 그리로 쫓겨 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평양으로 길을 잡은 위표는 밤을 낮 삼아 군사를 몰고 달렸다. 날이 훤히 샐 무렵 동쪽으로 멀리 성 하나가 보였다.

“저곳이 어디냐?”

위표가 말고삐를 당겨 잠시 숨을 고르며 곁에 있는 장수에게 물었다. 그 장수가 눈을 비비고 바라보더니 겨우 알아보겠다는 듯 대답했다.

“곡양성인 듯 합니다.”

“그렇다면 저기 들어 아침밥이나 지어먹고 가자.”

위표가 그렇게 말하며 군사를 곡양성으로 향하게 했다. 그런데 미처 성벽 아래 이르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함성과 함께 한군이 쏟아져 나와 길을 막았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