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베를린 필하모니 홀,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 리허설 현장. 음악감독인 사이먼 래틀 경의 리드로 현과 관악의 질풍 같은 합주가 쏟아지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실로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
정상보다 높은 B플랫 음이 톡 튀어나온 것이다. 연주가 중단됐고, 타악기 주자와 래틀 경은 실로폰 아래를 들여다보며 뭔가 속삭였다. 잠시 후 연습은 재개됐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휴식시간에 타악기 주자에게 물어보았다. “아, 1970∼80년대 카라얀이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튜닝(음높이 맞추기)을 지금보다 높게 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음을 내렸죠. 실로폰에도 소리판마다 작은 나무 조각을 덧대 소리를 내렸는데, 그 조각 하나가 떨어진 거예요.”
우리는 ‘가온다’(C)음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음높이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의 연주법을 살린 ‘원전연주’ 스타일의 모차르트 교향곡을 들어보면 현대 스타일의 연주보다 반음 정도가 낮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음높이를 미세하게 높여서 연주하면 더 화려하고 집중된 듯한 ‘빠릿빠릿’한 소리가 난다. 이 때문에 연주자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튜닝을 높여왔다. 1840년대 ‘악기혁명’으로 모든 악기들이 좀 더 빠르게, 크게 연주할 수 있게 되면서 ‘음높이 경쟁’에는 가속이 붙었다.
한국의 경우는 일찍이 세종대왕이 1427년 정확한 음높이를 내는 ‘율관(律管)’을 만들어 후대에도 음높이가 일정하도록 하는 혜안을 보였다. 하지만, 서양에서 음높이의 통일작업은 19세기에야 시작됐다. 오늘날에는 A(가)음을 440Hz에 맞추도록 표준이 정해졌다. 1초에 440번 진동하는 소리가 ‘A’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독일권의 일부 악단은 A를 446Hz 또는 그 이상까지도 높게 맞춰왔다.
베를린 필의 경우 카라얀 사후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음악감독에 취임하고서야 음높이의 ‘제자리 찾기’가 이루어졌다고 악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집중적인 소리를 내기 위해 음높이를 올려도, 그 소리에 익숙해지면 여전히 소리를 더 높이고 싶을 것이다. 아예 반음을 올려서 연주하면 한층 더 긴장된 느낌이 나겠지만, 모차르트가 ‘주피터 교향곡’을 C장조로 썼지 반음 높여 D플랫장조로 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쨌거나 우리는 오늘날 모차르트 시대의 D플랫장조에 가깝게 이 곡을 연주한다. 오늘날에도 옛 음높이 그대로 남아있는 옛 성당들의 파이프오르간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