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박순철
“대왕, 아무래도 위표에게 너무 너그러우신 듯합니다. 대왕을 배신하고 적에게 항복하여 맞서기까지 하다가 싸움에 지고 사로잡혀온 자에게 막빈의 대우를 해주신다면, 앞으로 누가 대왕을 배신하고 맞서기를 망설이겠습니까?”
위표가 나간 뒤 마침 곁에 있던 주가(周苛)가 불만스러운 듯 한왕에게 물었다. 한왕이 빙긋 웃으며 받았다.
“이번에 팽성에서 크게 지고 온 뒤로 과인을 배신한 제후와 왕이 한둘이더냐? 과인이 위표를 죽이면 앞으로 어느 누가 다시 우리에게 항복해오겠느냐?”
그런데 며칠 뒤였다. 갑자기 평양(平陽)에서 유성마(流星馬)가 달려와 대장군 한신이 보낸 글을 바쳐왔다.
그와 같은 글을 받은 한왕 유방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한왕도 속으로는 진작부터 동북 세 나라의 일을 한신과 같이 보고 있었다. 하지만 패왕 항우가 언제 형양을 들이닥칠지 모르는 판이라 선뜻 한신의 뜻대로 해줄 수가 없었다. 3만이나 되는 정병을 빼냈다가 적의 대군을 맞게 되면 그보다 더한 낭패도 없을 터였다. 그 바람에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해 장량과 진평을 불렀다.
“자방 선생은 어찌했으면 좋겠소?”
한왕은 두 사람에게 한신의 글을 내주고 다 읽기를 기다려 물었다. 진평이 두 번 살펴볼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대장군 한신의 뜻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군사 3만에 조나라를 잘 아는 장수를 얹어 보내 오래 날짜를 끌지 않고 동북을 평정하게 하십시오.”
“그 사이 패왕이 대군을 몰고 들이닥치면 어찌 하겠소?”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