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익계열 출판사인 후소샤(扶桑社)가 일본 정부에 제출한 교과서 검정 신청본이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조선인들의 자발적인 요청에 의한 것처럼 기술하는 등 식민통치를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내용을 대거 포함시킨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일본의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만든 이 교과서 신청본이 검정을 통과할 경우 2001년 거세게 불붙었던 ‘역사 왜곡 교과서’ 파동이 4년 만에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신청본이 검정을 통과할 경우 강경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특히 정부는 최근 독도 문제에서도 드러났듯이 종전의 ‘조용한 대일(對日) 외교’ 기조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할 말을 하는’ 적극적인 외교 전략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어서 2001년 주일 대사를 소환했던 것보다 더 강경한 대응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외교통상부 이규형(李揆亨) 대변인은 이날 “신청본이 자국 중심주의적 사관에 입각해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인근 국가의 역사를 폄훼하고 있는 것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반을 구성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역사왜곡 시정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인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대표 서중석 등)는 이날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후소샤가 지난해 4월 문부과학성에 검정을 신청한 중학생용 공민교과서와 역사교과서를 입수해 파악한 역사왜곡 실태를 공개했다. 이들 신청본이 다음 달 초 검정을 통과하면 올해 8월까지 학교별 채택 과정을 거쳐 내년부터 교과서로 사용된다.
이 중 역사교과서 신청본은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별도 칼럼을 통해 ‘일제 식민지 통치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기술했다. 또 현행 교과서의 기술 중 ‘징용과 징병이 식민지에서도 행해져 많은 조선인들이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했다’는 부분을 삭제했고, ‘1910년 한일합방을 조선인 중 일부가 수용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일제의 강제동원에 대해선 ‘전쟁 말기에 징용징병제가 확대 적용되었다’고만 기술했을 뿐 군대위안부 관련 내용은 기술하지 않았다. 강제 연행에 관한 기술도 종전에 비해 약화됐다. 또 19세기 말 조선을 ‘중국의 복속국’으로 기술했다.
공민교과서 신청본은 앞부분에 독도의 전경 사진을 추가하고 ‘한국과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라는 설명을 달았다. 신청본 본문에는 독도에 대해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돼 있다.
후소샤의 신청본은 이 밖에 1931년 일본군이 일으킨 만주사변에 대해서도 중국 내 배일(排日)운동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기술하는 등 중국과 관련된 역사도 많이 왜곡해 중-일 간에도 심각한 외교 분쟁이 예상된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신청본이 2001년 판보다 더욱 개악됐다”며 “왜곡 날조된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일본 전국에서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