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은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1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본관 2층에서 ‘소리 없는 전쟁, 일본의 역사왜곡을 말한다’는 내용의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에는 일본교과서 왜곡, 일본군 위안부, 독도영유권 문제와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 관련 사진, 조형물, 영상자료들이 전시된다. ‘독도의 날’ 제정을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도 진행된다. 김동주 기자
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지원하는 후소샤(扶桑社)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2005년 검정 신청본은 2001년 검정본에 비해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일제 침략을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약칭 교과서운동본부·공동대표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후소샤 교과서의 검정 신청본을 분석한 내용을 11일 공개했다. 신청본은 한국 전(前)근대사의 종속성과 타율성을 과장하고 일제 침략을 한반도의 문호개방으로 왜곡했다. 식민지배도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일제의 침략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미화했다.
○ “한반도는 타율과 종속의 역사”
한반도 고대사에 대한 기술은 2001년 판에 비해 훨씬 악화됐다. 이 책은 26쪽에서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대방군(帶方郡)의 중심지를 현재의 서울 근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황해도 봉산 지역이 대방군의 중심지라는 학계의 일반적 판단과 배치된 것이다. 32쪽의 4세기 말 지도에는 313년에 축출된 낙랑군(樂浪郡)이 여전히 평양에 남아 있는 것으로 소개돼 있다.
한반도 남부 가야 지방에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任那)가 존재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기술은 더 늘었고, 지도상에 임나의 영역을 가야와 마한(전라도 지역)으로 확대했다. 이는 한반도 북부는 중국, 남부는 일본의 지배 아래 한국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과거 식민사관의 재판(再版)이나 다름없다.
신청본은 또 신라는 당의 복속국이었고(42쪽), 조선은 청의 복속국, 조공국(148쪽, 163쪽)이었다고 기술했다. 2001년 검정 신청본에서 중국 역대 왕조의 복속국이라는 표현을 최종 검정본에서 ‘중국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 아래 있었다’로 바꾼 것에 비해 더 악화된 내용이다.
○ 한반도 식민지배 합리화
과거 ‘한반도가 대륙으로부터 하나의 팔처럼 돌출돼 있어 적대적 대국의 지배 하에 들어간다면 일본을 위협한다’고 표현했던 부분을 아예 칼럼(163쪽)으로 확대 소개하면서 일본이 안전보장을 위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준 것으로 식민 지배를 미화했다. 교과서운동본부 측은 조선 관련 부분에서 2001년 판에 한 차례 등장했던 ‘근대화’라는 용어가 이번 신청본에서는 네 차례나 등장한다고 밝혔다.
한일강제합방에 대해 ‘한국 내에서 일부 병합을 수용하자는 소리도 있었다’(170쪽)라고 표현한 것은 2001년 ‘자체 정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진 삭제했던 부분을 복원한 것이다.
반면 식민지 침탈에 대한 묘사를 누락 축소하거나 표현을 완화했다. 2001년 고의 누락으로 가장 문제가 됐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은 여전히 빠졌다. 또 2001년 판에서 ‘황민화 정책이 강제되어 일본식 성명을 사용하게 하는 정책 등이 진행했다’는 표현을 ‘일본식 성명을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는 창씨개명이 행해지고 조선인을 일본인화 하는 정책이 진행됐다’(208쪽)고 강제성을 희석시켰다.
○ 침략전쟁의 왜곡과 미화
러-일전쟁의 반발에 대해선, 러시아가 한국 북부에 벌목장을 설치한 것을 두고 군사기지를 건설한 것처럼 몰아 안보 위기 때문에 전쟁 발발이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여전히 서술했다(166쪽). 일본의 승리에 대해선, ‘식민지가 된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줬다’(168쪽)고 표현해 일본이 조선인들을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구해 준 해방자라도 된 것처럼 호도했다.
대동아전쟁과 태평양전쟁에 대해서는 일본의 자존자위를 위한 전쟁(202∼203쪽)이라고 규정했다. 또 패전 후의 배상 사실 등을 뺀 채 일부 일본군 병사들이 동남아 각국의 독립전쟁에 참가했다는 내용을 추가해 대동아전쟁이 마치 식민지 해방전쟁인 것처럼 묘사(206∼207쪽)했다.
전체적으로 신청본에 새로 등장한 ‘역사의 명장면’이라는 다섯 개 코너 중 네 개가 전쟁이나 군대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점, 교과서 말미에 제2차 세계대전과 식민지배의 최종 책임자라 할 수 있는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배치한 점 등도 군국주의적 인상을 주고 있다.
후소샤 역사교과서의 역사왜곡 실태쟁점2001년 검정본2005년 검정 신청본 반박임나일본부설-“4세기 후반 야마토조정은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출병. 반도 남부의 임나라는 지역에 거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고구려 남하 정책에 야마토 조정이 백제와 신라를 도와 전쟁.
-고구려의 반도 남부 석권.
-야마토 조정 임나에서 철퇴.-고구려의 백제 공격에 백제가 야마토 조정에 도움을 요청 추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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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가 신라에 멸망, 조선반도 근거지 상실일본의 임나 지배와 출병을 확실하게 서술하고 임나의 멸망 항목까지 새로 설정해 임나일본부설 보강한반도와 일본-조선반도가 일본을 향하여 팔처럼 돌출돼 있다.
-적대적인 대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일본 방위가 곤란-‘조선반도와 일본’이라는 별도 칼럼으로 내용을 강화
-적대적 대국을 러시아로 명기해 강조
-조선을 둘러싼 일청 대립 강조러일전쟁 발발 책임을 러시아에 전가. 조공국 조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청의 의도와 러시아의 침략성을 부각
조선 근대화에 일조 -일본은 조선의 개국 이후 근대화를 돕기 위해 군제개혁을 지원
-일본은 철도 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개시-조선과 관련된 근대화 표현을 4차례 사용-수탈과 지배 목적을 은폐하고 일제의 식민통치가 조선을 위한 것처럼 왜곡 한일강제병합-영국 미국은 서로 경계하고 있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한국내에서는 병합을 받아들이자는 소리도 있었으나(자진삭제)-구미열강은 자국의 식민지배를 일본이 인정하는 대신 일본의 한국병합을 인정
-복원
-조선총독부는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국병합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세련되게 표현
-자진 삭제했던 내용을 복원시킨 것은 후안무치한 행태.
-일본 대신 조선총독부로 ‘근대화’의 주체를 더욱 구체화국민동원과종군위안부-여러 가지 희생이나 고통을 강요하였다
-황민화 정책이 강제되어
-창씨개명이 강제로-강요 강제 등 삭제
-황민화 창씨개명 등의 표현을 완화-정책실시의 강제성을 밝히는 서술을 삭제
-국민동원 정책에 반발했다는 내용 없어
-종군위안부 사실 자체를 부정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中-日전쟁은 中서 도발”… 난징학살도 부정▼
일본의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지원하는 후소샤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2005년 검정 신청본은 일제의 중국 침략과 관련해 중국이 중-일전쟁을 도발했다고 왜곡했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측은 “중국 역사에 대한 왜곡이 한국보다 더욱 심하다”고 밝혔다.
○ ‘21개조 요구’는 중국의 책임?
이른바 ‘21개조 요구’는 1915년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일본의 강압에 못 이겨 일본에 남만주 철도경영권 연장 등 이권을 넘겨준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 2001년 판에서 ‘일본의 요구를 위안스카이가 (강제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는 식으로 표현했으나 이번에는 ‘일본이 요구했다’며 강제성을 걸러냈다. 또 중국 측이 교섭 내용을 고의로 누설하고 공식 요구사항이 아닌 것을 포함해 ‘21개조 요구’라고 확대 선전해 반일여론을 부추겼다고 왜곡했다.
○ 중국의 배일 운동이 만주사변의 원인?
신청본에서는 일본 정부 혹은 관동군의 만주지배 강화에 관련된 여러 사건 등은 모두 삭제됐다. 2001년판에서 “만주사변은 일본 정부와 관계없이 일본 육군의 파견부대인 관동군이 일으킨 전쟁”으로 규정해 관동군에 책임을 묻던 대목도 이번에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 중국 공산당이 중-일전쟁을 도발?
신청본은 “공산당원이 국민당에 잠입해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도발활동을 추진했다”고 기술했다. 이를 위해 군벌 장쉐량(張學良)이 장제스(蔣介石)를 감금해 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됐던 1936년 시안(西安)사건을 추가했다. 그러나 중-일전쟁의 원인이 된 친일 정권(만주국) 수립에 관한 기술은 삭제했다. 난징 학살에 대해서는 “자료상의 의문점도 있고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며 일본군의 중국인 살해를 인정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판결마저 부정하고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