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자국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내용이 알려졌다. 2001년 판보다 더 악랄하게 날조돼, 개선에 대한 기대는 철저히 배반당했다.
새 교과서는 ‘이씨조선’을 조선으로 고쳐 쓰고,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征韓論) 부분을 지워 ‘성의’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이 고통과 희생을 당했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강제징용과 징병을 ‘전쟁 말기에 징용징병제가 확대 적용됐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창씨개명은 한국인이 원해서 한 것처럼 왜곡했다. 한술 더 떠서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별도 칼럼을 만들어 침략과 식민지배를 미화·정당화했다.
이렇게 되면 기댈 곳은 일본 문부성과 양식 있는 지식인 및 시민단체뿐이다. 문부성은 지금 이 교과서를 검정 중이다. 이달 말이나 내달 초면 문부성이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달라고 요구했는지 드러난다. 시간이 얼마 없지만 문부성은 마지막까지 성의를 다해 검정에 임하기 바란다. 그래야 한국과 일본 관계가 벼랑 끝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 다음은 시민단체다. 2001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그룹은 학교들의 이 교과서 채택에 반대하는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 ‘스기나미(杉竝) 어머니 모임’ 등을 결성해 활동했다. 이들은 항의집회, 전국 순회강연, 기자회견, 인간띠잇기 행사 등을 열어 역사왜곡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결국 이 교과서 채택률은 0.039%에 그쳤다. 이들이 선언한 대로 ‘양식 있는 일본인들의 승리’였다.
왜곡·날조한 기술(記述)을 역사라고 가르치기에 혈안이 된 집단이 일본 안에서 득세하는 한, 한일 양국의 미래는 어둡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고도 동북아 지역협력을 말할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양식 있는 일본인들의 의미 있는 승리’를 기대한다.